하지만 소아암 환자 같은 이들에겐 이런 작은 행복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가정의 달'은 가슴이 미어지는 달이다.
육체의 병, 가정 경제파탄으로 귀착
권력자가 자선을 명분으로 내걸고 권력의 도구로 활용했던 단체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여전하지만, 지난해 소아암재단을 '떠안은' 한동숙 이사장을 보면 세상이 다 그런건 아니다.
소아암재단은 2002년 A제약업체가 1억원을 후원하겠다는 말을 믿고 소아암돕기 마라톤대회를 열었었다. A사는 정작 대회가 끝나자 돈 대신 '권장소매가'로 계산한 1억원어치의 영양제를 보내왔다. 후원 약속을 믿고 대출 받아 한시가 급한 아이들을 지원하고 행사를 치르느라 돈을 써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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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은 교회등을 돌며 약을 몇 천원씩에 팔았지만 수천만원의 빚더미를 피할수 없었다. 설립자 이 모 이사장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좋은 일을 후원했다는 홍보효과를 챙긴 A사는 최소비용-최대효과라는 경영원칙을 실천했지만, 소아암 어린이들은 기댈곳 한곳을 잃게 됐다.
재단 후원자이던 한이사장은 집을 팔아 현금 4억원을 내놓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땅을 재단에 기부하고, 봉사자를 모아 운영까지 떠맡았다. 20여년간 매년 영세민들에게 쌀 2000여가마를 남모르게 나눠주는 등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남을 도와왔던 그가 모른체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 쉬시라"는 자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금도 만나는 사람마다 "보태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며 산다. 얼마 안되는 후원금을 받기 위해 매달 송금날이면 아침부터 몇번이고 은행을 들락거리는 보람이(가명)할머니, 골수이식 수술비 600만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인지네(가명)가족을 생각하면 손벌리는게 부끄러울게 없다.
'분배 알레르기' '구조적 모순' 양극단
정부예산같은 사회의 자원이 복지 쪽으로 조금이라도 가는것 같으면 "지금이 어느땐데 성장 보다 분배를 우선시하느냐"고 언성을 높이는 '분배 알레르기'가 어느덧 보편적 정서가 돼 버린 우리 사회. 한번쯤 이런 곳을 들러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는게 '약'이 될 수 있다.
'기업은 이익만 많이 내면 된다' '사회에 기여하라는것은 비시장적인 강제 준조세'라는 비정한 시장주의. 나중에 가래로 막아야 할 구멍을 미리 호미로 살피는게 오히려 비용을 줄이고 성장잠재력을 훼손하지 않는 시장 마인드일 수 있다.
'모든것은 구조적 모순 탓'이라며 봉사와 자선을 경시하는 386시대 모범답안도 해결책은 아니다. 복지 예산과 공무원 수와 조직을 늘리는 정책의 비효율성은 1960년대 중반이후 본격화한 미국의 사회보편주의 복지정책(Social Universalism)이 남긴 교훈이었다.
멀리 갈것도 없이 우리에겐 55년간 착취당해온 '노예 할아버지'가 있다. 28만 6000원의 정부지원금은 고스란히 '주인' 손으로 들어갔다. 지원금의 전달이 임무인 '직업'공무원입장에서는 누가 받든 상관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행단계에 가면 지방자치단체의 말단 공무원 한두명에게 복지 행정의 부담과 권한이 집중되는 것은 정부주도 사회안전망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시장(민간)에만 맡겨둬서 될 일도, 정부가 모든것을 해결할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회안전망은 두 부문이 날줄과 씨줄이 될때 가능하다. 제2, 제3의 한동숙 이사장이 양 극단을 넘어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덧붙여서>
한달에 만원짜리 후원계좌를 만들면 1만원 지폐 무게만큼 마음이 가벼워진다.
전국의 소아암 가정은 4만가구. 정부나 후원단체의 손길이 닿는 곳은 극소수이다. 월평균 5000원씩 내는 소아암재단 정기회원은 불과 300여명, 기업 후원은 한곳도 없다
-한국소아암재단 02)3675-1145, ARS후원 060-700-1145, 국민은행 060401-04-025956
-소아암재단 홈페이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