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세계경쟁 '국내發 자멸' 두렵다

머니투데이 성화용 기자 2006.04.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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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한국 먹여살릴 기업… 경제비중 등 고려할 때

'현대차 사태' 한 달을 지켜보는 경제계의 시선에서 착잡함을 넘어 두려움이 읽힌다.
사법적 정의와 재계 현실 사이의 깊은 골을 새삼 확인한 데 따른 자괴감이 점차 이 사태가 초래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결과에 대한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다.

사건을 통해 드러난 특정인들의 혐의와 비리내용은 각론으로 치부해 덮어둘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10만 이상을 고용하고 있고 협력업체를 포함해 30만이 넘는 근로자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 이 거대기업의 진로가 검찰의 칼날 위에 놓여있다고 생각해 보면 '경제'를 먹고 사는 기업인들이 두려워하는 건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현대차 (241,000원 ▼1,000 -0.41%)그룹이 기업으로서 가장 찬연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 시기라는 점이 더욱 공교롭다. 자동차회사를 세운지 39년, '포니'를 양산해 수출에 나선지 30년이다. 한 세대를 보내고서야 현대차는 마침내 세계와의 경쟁을 시작했다. 반도체와 철강, 조선에 이어 자동차도 글로벌 시장의 승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한국을 먹여살릴 또 하나의 텃밭이 생기는 것인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이 결정적인 순간의 경제사적 의미와 사법적 정의가 타협할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인가. 만약 이번 수사의 여파로 현대차가 서서히 침몰해 몇 년후 또 하나의 대우자동차로 전락한다면, 그것을 온전히 '정의 실현'을 위한 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 결과는 그저 '범법자'들의 몫일 뿐,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인가.



재계는 현대차그룹의 경제적 비중과 기업이 놓인 시기상의 긴박함을 감안해 달라고 주문한다. 국가적 이익이라는 대명제를 기준으로 '현대차 사태'는 한국경제가 감수할 수 있는 '합리적 위험'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게 경제계의 시각이다.

조화와 균형이 깨진 통치는 위험하다. 검찰의 수사와 사법적 판단을 포괄적인 통치행위의 일부로 볼 때 법이 요구하는 정의의 즉시적ㆍ직접적인 실현이 다른 모든 명제에 우선하는지 냉정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수사당국이 안대를 한 경주마처럼 옆을 돌아보지 않는 건 통치의 본령에 비춰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재계가 현대차그룹에 묘한 연대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우리 경제의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검찰의 수사가 '현대차그룹'으로 수렴된 이후에도 재계는 '비리'와 '위법'에 대해 그다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어떤 기업도 그런 식의 압수수색을 하면 당연히 걸려들 것'이라거나 '결벽적 수사에 당할 기업이 있겠느냐'는 식이다. 현대차사태를 지켜본 기업인들은 스스로를 잠재적 수사대상자로 여기고 있다.

문제는 재계의 동지의식이 수사당국, 나아가 집권층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정부의 정책적 지향점을 거스르는 것이다. '양극화'는 완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접점을 찾아 타협하고 끌어들이며, 끊임없이 인내하는 과정에서 경제·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현대차사태는 '비리 수사'로 시작됐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계층과 이해집단 간의 불신과 불화, 경직되고 편벽한 통치체제의 일단을 드러낸 사건으로 이해된다.

정몽구회장 등 총수 일가의 사법 처리에 대해서도 양론이 있지만 '위험'을 줄이는 방식을 택해달라고 당부할 수 밖에 없다. 정회장의 역할과 기여는 현대차그룹의 '현재'를 들여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6년간 매출과 자동차 생산이 두 배로 늘었다.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의 완성차 메이커들이 현대차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생전 최후까지 장자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그가 마침내 기업인으로서의 꿈을 실현하는 단계에 와있다. 이러한 역사적 골격을 일순간 무너뜨리는 건 위험할 뿐 아니라 가혹한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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