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이런 전화가 휴대폰으로 걸려오면 대충 흘려듣고 끊어버리기 일쑤였지만, 때가 때인지라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지난달 27일부터 휴대폰 보조금이 부분허용된지 한달이 채 안돼 이동통신 3사가 잇따라 보조금 지급금액을 인상하면서 번호이동 고객을 노리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어떻게 제 보조금 액수를 알 수가 있나요. SK텔레콤에서 LG텔레콤 고객의 보조금 액수도 파악할 수가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그럼요"라며 그것도 몰랐냐는 듯이 대꾸한다. 어이가 없었다. 전화로 주민등록번호를 묻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인데, 타사 고객정보를 아무런 꺼리낌없이 묻는 태도에 기가 막혔다. 본인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같았다.
그 텔레마케터에게 직접 확인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에 찍혀있는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로 걸었지만, 전화벨소리가 끊어질 때까지 전화를 받지않았다. 이후 나오는 안내목소리는 "KTF 음성사서함입니다" 였다. 이후 몇차례 전화를 더 걸어봤다. 역시 받지않았다. 유선전화와 다른 휴대폰에서도 걸어봤지만 소용없었다. 텔레마케터가 전화를 받지않는 것도 상식 밖이었지만, SK텔레콤 영업을 하는 사람이 KTF 가입자라는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휴대폰 보조금 지급액을 인터넷으로 인증해주는 제도가 빚어내고 있는 또하나의 부작용이다. 아마도 이 텔레마케터는 전화로 알아낸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해당 이통사의 홈페이지에서 보조금 액수를 조회할 것이다. 휴대폰으로 알려주는 '인증번호'까지 알려달라고 해서 그 정보를 고스란히 남겨놓고 두고두고 울궈먹었을 게 분명하다. 인증서를 위조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통사 직원을 사칭하고 남의 정보를 가로채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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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를 함부러 가르쳐주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통사들이 보조금 지급액을 인상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현재의 보조금 액수에 만족하지 못한다. 월 사용실적이 4만원이하인 가입자의 보조금은 기껏해야 10만원이다. 이런 판국에 '공짜폰'을 주겠다는 전화가 왔으니, 혹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휴대폰을 값싸게 장만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하고 있는 이같은 '호객행위'는 자칫 개인정보 유출로 이어질 위험까지 안고 있다.
이통시장에서 빚어지고 있는 호객행위가 비단 이런 유형뿐이겠는가. 규제기관의 삼엄한 감시눈길을 피하기 위한 편법행위는 갈수록 교묘해질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부가서비스를 강요하는 것부터, 정상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현금으로 돌려주는 행위까지. 조사인력이 한정돼 있는 규제기관이 모든 불법행위를 막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이통시장 비정규유통망에서 빚어지는 불법행위를 색출하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에 가깝다.
그런데도 통신위는 이통사에 대한 과징금 기준을 엄청나게 높여놓고, 자꾸 불법행위가 적발되면 영업정지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소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쓴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삼국지에 이런 말이 있다. 복소지란(復巢之卵), '둥지가 부서지면 알이 성할 리가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