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칼럼]'흥행제로' 韓銀총재 인선

머니투데이 강호병 금융부장 2006.03.0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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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박 승 한국은행 총재 후임자 인선이 코앞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심들이 없다. 한은과 업무연관성이 가장 큰 채권시장부터 "시간 지나면 바뀌는 자리인데 관심 가질 것 있나. 대통령이 이번에도 적당히 인선하겠지"라며 시큰둥하다.

 중앙은행 총재는 한나라의 돈과 물가, 그리고 경제를 책임진 중요한 자리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중앙은행 총재가 바뀌는 것은 큰 관심을 모으는 이벤트가 돼야 마땅하다. 중앙은행 총재가 바뀐다는 것은 통화정책의 색깔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하마평에 오른 인물 면면과 성향, 인간관계 등을 놓고 누가 적격자인지 논쟁의 도마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 나라에서 한은 총재 인선 이벤트는 `흥행제로, 감동제로'의 통과절차일 뿐이다. 이는 미국 중앙은행 총재가 앨런 그린스펀에서 밴 버냉키로 교체될 때 분위기와 정말 대비된다. 그의 총재 입성 얘기가 나온 직후부터 월스트리트는 "정책 경험이 없는데 버냉키가 잘해 낼까, 그린스펀의 반도 못하면 어쩌나"라며 전전긍긍했다. 그가 집무를 시작한 지금도 월가는 그의 능력에 대한 경계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경제대통령으로 칭송받으며 최장의 호황을 이끌며 촌철살인하는 수사로 시장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그린스펀의 그림자가 너무 큰 탓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상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위력을 지닌 미국 중앙은행 총재와 아시아권 중앙은행 총재 인선을 단순 비교할 수 없는 면도 있다.



 그러나 총재 교체에서 드러나는 초라한 한국은행의 위상은 그러한 글로벌 한계에서만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시대에 새로운 중앙은행으로서의 위상을 갖추며 감동적인 역할을 보여주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 크게 보면 고 전철환 총재, 박 승 총재를 거치면서 한은의 독자성과 역할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천해 왔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박 총재도 잦은 말실수로 좌충우돌한 면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독자적인 정책 결정을 내리려한 흔적이 많이 엿보인다.

 그러나 아직 한은의 위상과 역할은 미완성이다. 투명한 정책 결정 과정,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운용, 시의적절한 수사 등으로 정책효과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주는 일은 여전히 한은의 숙제로 남아있다.

 특히 한은 총재의 잦은 교체는 통화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고 한은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원천적인 장애물이다. 한은 총재는 4년 임기제다. 1회에 한해 연임을 보장하고 있지만 연임은 고사하고 임기를 다 채우면 다행인 게 한은 총재의 현주소다. 다른 정부 산하 기관장 자리와 비슷하게 한은 총재직은 때가 되면 바뀌는 정거장 자리가 되고 있으니 관심도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한은 총재는 다른 자리와 달리 자질에 문제가 없고 시장이 흠모하는 인물이라면 종신이라도 못할 게 없어야 한다고 본다.

기존 인선구조에 따라 또다시 새 한은 총재를 뽑는다는 것이 못내 씁쓸하다. 그래도 차선을 선택하라면 통화정책과 시장을 잘 이해하고 정책실무 경험이 충분해 업무연속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분이 총재를 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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