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1억 연봉자 '450만원 투쟁'

머니투데이 성화용 기자 2005.12.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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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수준의 급여, 다른 어떤 직장 못지 않은 복리 후생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파업에 서민들이 분노를 넘어 허탈해 하고 있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파업 첫날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강제조정을 권유한 것도 '파업피해'와 '여론의 재촉'을 고려한 때문이다. 이에대해 노동부가 "아직 개입하기 이르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



노동부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때도 25일만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파업 피해를 키웠다. 피해가 광범위할 뿐 아니라 파업의 명분을 수긍할 수 없다는 점에서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파업은 아시아나항공 때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우선 평균연봉 1억200만원 받는 조종사들이 1억450만원으로 인상하는 게 너무 작으니 1억850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투정 부리는 것은 평균의 시각으로 보면 납득하기 어렵다. 억대 연봉자들이 1년에 400만원 더 받자고 파업을 결정해 수천, 수만의 항공 이용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건 상식을 넘어 어이없는 행동이라는 비판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평균 연봉 4000만원 밖에 안되는 대한항공 일반직 노조가 고유가 등 항공사 경영환경 악화를 고려해 임금을 사측에 위임한 것과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부자가 더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넉달 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은 비행시간 등 근로조건 개선이 명분이었다. 이 때도 사회 전체가 들고 일어나 조종사들을 나무랐다. 그나마 그들은 '고액 연봉'을 의식해 돈 얘기는 꺼내지 않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훨씬 과감해 보인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여론이 어떤 비난을 퍼붓든 '임금'을 더 받아내면 그만이라고 보는 것 같다.


항공운송 납기를 못맞춘 중소 수출업체의 몇만달러 손해나 모처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 가족들의 참담한 실망 쯤이야 '조종사 1인당 연 400만원'이라는 과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1억 450만원과 1억850만원이 하늘과 땅 차이로 느껴지고, 여기에 지난해 실적에 대한 성과급으로 1인당 1135만원을 더하면 잠깐의 비난은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파업이 길어지는 것도 두려울게 없다. '국가적 손실' 운운하는 건 연봉 올려 파업 끝내놓고 나면 쉽게 잊어버릴 것이다. 여기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경제력도 있으니, 몇 달쯤 버티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대충 이런 계산이라면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파업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실용적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적어도 몇 달 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의 파업 선례를 학습한 결과로 보면 충분히 근거가 있다. 그렇게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아시아나 조종사들도 지금은 별 탈 없이 잘 생활하고 있다. 파업기간동안 비행수당 못받은 것도 그 정도 고소득자들에게는 별 충격이 못된다. 덕분에 한달 이상 일 안하고 맑은 공기 쐬며 동지애를 다지지 않았던가.

이번 만큼은 이런 결과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게 '조종사 파업 피해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결항의 피해는 항공 서비스 수요자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지고 정작 가해자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

당국의 직권중재는 빠를수록 좋지만, 이와 별도로 조종사들에게 뭔가 대가를 치르게 해야 이들의 '수월한 파업'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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