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無知)의 비리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2005.11.15 12:45
글자크기

[패션으로 본 세상]

무지(無知)의 비리


얼마전 감사원이 지자체의 국고보조금 집행 실태에 대한 일제 감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조기 집행한 국고보조금들이 과연 실효성있게 쓰였는지 진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으로는 불필요한 곳에 예산이 집행되었는가에 대한 조사와 함께 업무추진비 등 소모성 경비로 불법 전용된 사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는지를 면밀히 검토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감사원은 국고보조금이 '실효성있게' 쓰였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 실효성에 대한 판단 여부, 불필요한 지출에 판단 여부는 도대체 어떠한 기준으로 세워지는 것일까.



1960년대 미 항공 우주국(NASA)에서 있었던 일이다. 러시아가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자 이에 자극받은 미국은 급하게 우주개발에 열을 올렸다. NASA는 이 때 무중력상태에서 쓸 수 있는 펜(pen)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우주공간에서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잉크가 밑으로 내려오지 않아 일반적인 볼펜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NASA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스페이스 펜(space pen)'을 개발해냈다. 여기에는 중력 대신 압축공기를 사용하여 잉크를 밀어내는 방식이 개발되었고, 이를 위해 자그마치 120만달러(혹자는 280만 달러라고도 한다)에 달하는 연구비가 소모되었다. 그들이 펜을 개발하고서 스스로의 기술에 얼마나 감탄하였겠는가.



그러나 냉전이 서서히 끝나가고 동서화해가 이뤄질 무렵, 미국에선 그동안 러시아가 우주에서 어떤 펜을 사용하는지를 듣고 아연실색하게 된다. 러시아의 우주 비행사들은 심플하게도 '연필'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스개란에 종종 올라오는 이 이야기의 뒷면에는 보다 재미있는 진실이 숨어있다. 의문을 품어보라. 과연 NASA의 인재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연필'을 생각을 해내지 못했을까.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자.

대부분은 아마 이 프로젝트 자체에 무관심했을 것이다. 핵심적인 우주선의 개발도 아니고 '펜'에 대한 연구가 아니던가. 정부가 우주용 펜을 개발하건 우주용 지우개를 개발하건 그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들의 무관심은 오류들을 지나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분명히 의심했으리라. '연필'로 쓰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는 곧 생각했을 것이다. 말하지 않는게 자신의 앞길을 위해 상책이며, 혹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자신이 모르는 절대적 이유가 있을 때 혼자 바보가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우주용 필기구는 필요하였고, 그에 대한 용역은 정당한 회계장부상 인정받았다. 연구진은 그같은 연구비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고 최선을 다해 펜을 개발했다. 그리고 펜은 어찌 됐건 사용되지 않았는가. 이 경우 우리는 막대한 비용에 대한 실효성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부정적 시나리오는 때로 현실이 된다. 문제는 '말해지지 않는 부분'과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난 부분'에 있다. 말해지지 않는 부분이란 '사람'의 문제, '심리' 의 문제를 의미하며, 무언가 경제적으로는 정의되기 어렵기 때문에 완벽한 누수 지점이 되고 만다.

저명한 마케팅 컨설턴트인 잭 트라우트(Jack Trout)는, 이처럼 '선의를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그의 지적은 실로 흥미롭다.

그는 매우 유능하고 열성적인 기질을 지닌, 새로 부임한 담당자들이 종종 기업의 기존 마케팅에 대해 강한 의문과 부정을 품게 됨으로써 기업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부임과 동시에 무언가를 바꾸려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조직적 차원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재량과 위임 뒤에 평가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재량은 재량을 낳고 위임은 위임을 낳게 된다.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진취적인 사람들의 공통적 특성이다. 평가와 컨트롤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떠한 우수성도 누수의 함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

무관심의 영역 또한 주의를 요하는 누수의 지점이다. 영국에서는 일찍이 국가 차원에서 패션을 부흥시키려는 노력이 그 어느 국가 못지 않게 왕성했다. 그리고 그 같은 영국의 사례는 한 때 좋은 본보기로 여러 나라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이 진정으로 세계 패션의 선두가 되었던 부분에서 국가의 지원은 존재한 적이 없다.

영국 패션은 정통 트래디셔널에서도 선두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스트리트와 이단,다문화성의 시장에서 언제나 주목받았다. 미니스커트, 비틀즈의 모즈룩, 최근 언급된 메트로섹슈얼의 개념은 모두 런던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지원한 것은 언제나 전혀 다른 쪽이었다. 60년대에 유명했던 디자이너 마리 퀀트가 전세계에 미니스커트를 엄청나게 팔아대고 있을 때, 정부는 오히려 미니스커트를 집요하게 단속하려 하였고, 결국 마리 퀀트의 수출량이 무시못할 수준으로 방대해지자 정부는 뒤늦게 그녀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실은 정부는 패션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잘 몰랐고, 그러나 패션계를 지원하려는 선의는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당시 그들이 사용한 국민의 세금은 과연 영국 패션계에 실효를 거두었는가?

자칫 정부가 스스로 기준을 지니지 못한 분야에서 지나친 지원 의사를 지니고 있을때, 지출의 실효성은 평가하기 어려워진다. 모르는 상태에서 열심히 하는 오류, 이것이 무관심의 영역에서 농익어가는 오류, 감사원이 이번 조사에서 이같은 흐름을 짚어낼 수 다면 예산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얄궂은 상상을 하나 더 해본다. 모든 국고보조금 지원기관은 이름 옆에 '저희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됩니다'라는 문구를 달도록 하면 어떨까. 또한 지원금을 받은 기업들은 '저희는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은 기업입니다' 라고 문구를 달도록 하면 어떨까.

아마 엄청난 혼란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들에게 첨예의 관심을 보이게 될 것이며 이같은 관심속에 비효율과 무지는 아마도 스스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이들이 국민에게 얼마나 친절하며 조심하게 될 것인지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