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회장에게 쏟아진 물세례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05.06.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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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김우중 전회장에게 쏟아진 물세례


사진=박문호 기자

5년8개월간의 낭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맞는 인천공항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신새벽 현장기자들로부터 들어오는 온라인 속보들과 TV화면에서 전해지는 김우중씨의 귀국을 바라보는 뉴스편집자의 마음은 착잡했다.

기내에서 몇번이나 소리낮춰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낭독연습까지 했다는 한장의 쪽지를 읽을 시간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하기야 그 순간이 어떤 순간인가. 이제는 '대우그룹'이라는 이름은 기억조차 희미해져버렸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김우중' 세글자는 우리 시대 아픈 기억의 상징으로 남아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반듯한 '귀국 성명' 발표장면을 기대했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대우그룹 해체이후 겪어야 했던 아픔을 이야기하며 끝내 참지 못했던 대우피해자대책위원회 사람들의 눈물은 급기야 "구속수사"를 외치는 시위대에 의해 다시 한번 분출됐다. 초췌해진 백발의 전 총수가 흠뻑 뒤집어쓴 물세례는 IMF의 이름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의 눈물이었다.

어디 시위대 뿐이었으랴. 분노의 구호에 묻혀 한켠에서 '힘내세요'를 마음속으로 외쳐보던 김 전회장의 측근들의 가슴속에서도 그동안 눈물이 마를 날이 있었겠는가. 홀연히 떠났던 보스의 쓸쓸한 귀국을 바라보는 모든 전(前)대우 가족들의 눈가에도 이순간 다시 한번 회한의 눈물이 맺혔을 것이다.



김 전회장이 끝내 읽지 못하고 후배들이 대신 뿌려준 성명서에는 "실패한 기업인으로서 과거의 문제들을 정리하고자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돌아왔다"고 씌여 있었다.

귀국의 변처럼 그는 이제 전쟁에 패한 장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전쟁에 패한 원인과 책임은 별개로 치고, 숱한 희생자를 두고 여전히 연기가 치솟는 전장을 벗어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전투에 졌을뿐, 전쟁에 이기기 위해 잠시 벗어났었다는 건 그만의 착각이다. 이미 '김의 전쟁'은 끝났고 그는 패배했다. 누군가가 '나가 있으라' 하기에 나갔던게 5년8개월이 지났다고 말하는 것도 처량한 일이다.

공항에서 얼굴에 쏟아진 물은 손수건 한장으로 닦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닦아내야 할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일찍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말이 5년8개월만에 얻어낸 진심어린 결론이라는걸 보여줘야 할 순서가 남아있다.
검찰조사와 그 이후 삶을 통해, 김 전회장이 크고 작은 희생을 치른 사람들과 또다른 피해자인 대우 가족들의 눈물을 씻어줄때 비로소 그의 얼굴과 옷에 묻어있는 물기의 흔적이 사라질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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