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뇌물...'경제적 판별법'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04.09.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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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얼굴도 모르는 독자가 좋은 글을 써줘서 고맙다며 집 주소를 묻길래 집 근처 지하철역 이름만 가르쳐줬어요. 그랬더니, 지하철 역사내 픽업(pick-up)서점에 책과 CD를 담은 선물 꾸러미를 주문해뒀다며 가져가라는 전화가 왔더군요"

사이버공간의 금융부문 필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A씨. 그는 독자가 평소 자신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성향을 감안해 골랐다는 책과 CD를 손에 들고 한참 가슴이 훈훈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A씨로부터 들은 그 날, 언론은 100만원과 골프공이 담긴 선물봉투를 받았다가 추석 암행감찰반에 걸려 수십년 공무원 생활을 허무하게 접어야 했던 농림부 김주수차관의 기사를 전하고 있다.



같은 '선물'이었지만, 전자는 주고 받는 사람 모두를 훈훈하게 만든 반면, 후자는 받은 사람의 평생 공든탑을 무너뜨렸다. 준 사람은 "명절을 앞두고 '직위에 비춰보면 얼마되지 않는 돈'을 선물로 줬을 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받은 사람에게는 파멸의 저승사자가 돼 버린 셈이다.

선물의 세가지 본질은...



선물이 몇 발짝을 더 가면 뇌물이 되는지…동기나 배경, 대가성 여부를 두고 법정에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선물 관습이 우리보다 훨씬 광범위한 서구에서 선물행위(Gift-giving)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없었다면 오히려 이상할터, 이미 법적인 판단 이전에 '선물경제학(economics of gift)'은 경제분야의 흥미있는 분석거리가 돼 왔다.

학자들이 대체적으로 꼽는 선물의 본질은 '상호성 (reciprocity)''적정성(adequate)' '공감(sympathy)'세가지이다. 일방적이지 않고 주고받는게 선물이며, 적당한 효용성과 가치를 지닌 품목이며, 주고 받는 사람이 서로 '그럴 만한 사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게 선물이라는 뜻이다. 이정도 기준만 갖고 판단해도 선물인지 아닌지 대략 구분은 가능하다.

A씨의 경우는 그가 '글'이라는 선물을 독자에게 공짜로 제공한데 대한 독자의 '상호작용'이었고, 작가라는 처지에 걸맞는 품목과 몇 만원의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라는 '적정성'이 유지됐고, 주는 사람도 기껍고 받는 사람 역시 남들에게 '마음이 훈훈했다'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감정의 교류'가 있었다는 점에서 누가 뭐래도 말 그대로 '선물'임이 분명하다.


반면 농림차관의 100만원은 '일방적'이며('상호성'으로 이어질 경우 더욱 문제가 되는…), 현금이라는 '적절치 않은' 형태(대부분 '선물경제학'연구는 현금을 분석대상에 아예 포함조차 시키지 않는다)와 액수였으며, 주고 받은 사람 모두 (고질화된 부패사범들이 아닌 이상) 돌아서서 마음이 훈훈해지는 '공감대'가 형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농림차관의 100만원은 '선물'로 용인할수 없다.

왜 선물을 하는가...다섯가지 가설

네델란드 틸버그 대학의 제뢴 반 데 벤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선물의 주된 경제적 동기를 설명하는 가설 혹은 모델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먼저 첫째는 이타적(Altruistic)배경이다. 자신이 재화(혹은 용역)가 너무 많을 때 다른 사람의 소비를 통해 자신이 만족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모델 아래서 최적'선물은 자신의 소비-만족 함수와 타인의 소비-만족 함수가 극대화하는 점에서 찾아진다.

둘째, 선물은 화폐가 없던 시대에 잉여생산물을 '교환(Exchange)'하던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시장경제 체제로 들어서면서 교환의 매개체가 물건에서 화폐로 대체됐다. 먼저 잉여물을 생산해 타인에게 제공한 사람은 타인이 자신의 잉여물을 소비한뒤 다른 선물로 돌려줄 것을 기대하는 사회적 신뢰성이 뒷받침되고 있다.

세번째, 사회적 인정(Social approval)을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이 선물행위를 낳는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주는 행위 자체보다는 사회적 인정으로 부터 오는 뿌듯함이 선물의 배경이 된다. 자원봉사도 여기 해당하며, '사회적 인정'에는 직접 수혜자들이 아닌 주변 사람들한테 받는 찬사도 포함된다.

네번째, '게임이론'을 적용, 선물은 상대방에게 신뢰성을 쌓기 위한(Building trust) 신호로서 사용된다는 견해도 있다. 다시 말해 거래가 이뤄질수 있도록 하는 전략적 도구로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성향과 수에 따라 여러가지 조합이 가능한데, 예를 들어 상대방이 선물을 받고도 자기는 하지 않을 비겁한 자라는 생각에 아예 아무도 선물을 하지 않는 경우가 플레이어들에겐 최악의 선택이 된다.

다섯번째, '성선설'적인 해석인데, 불공정한 상태를 회피(Reducing inequity)하려는 사람들의 본성이 선물행위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선물을 주고 받기 찜찜한 이유

실제 사회에서는 선물하는 사람이나 선물의 종류, 시기, 사회적 배경에 따라 이런 설명이나 모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이야기하는게 합리적일 것이고,
굳이 이런 '썰(說)'을 늘어놓는 것은 선물의 경제적 배경을 기준으로 한가지씩 좀더 자세히 따지다 보면 추석이라고 해서 거래처나 민원인들로부터 선물을 받는게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첫번째, 거래처나 민원인 등 선물 주는 측이 나의 소비를 통해 기쁨과 만족을 얻는 '이타적 배경에서 주는 경우는 없을 터이니, 내가 받는 물건이 본래적 의미의 '선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둘째 기준, '교환'의 개념으로 본다면, 상대방이 나로부터 뭔가를 돌려받기 바라는데 나는 비슷한 선물을 할 생각이나 능력이 없다면 이 또한 '선물'이라고 받기가 찜찜해진다. 내가 돌려줘야 할 것이 비슷한 물건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이라면 더욱 께름칙하다.

세번째, 주는 사람이 'A에게 선물줬다'며 사회적으로 공개해 인정받는다 해도 등골이 오싹하거나 최소한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선물'을 받을수도 있을 것이다.

네번째, 거래를 트기 위한 '신뢰를 쌓으려' 하는 경우는 두번째 기준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선물을 주는게 '부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거라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는 일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모델이나 가설을 떠올려봐도 거래처나 민원인 등, '사회적 관계'에 놓인 측으로부터 추석때 받는 물건들을 본래 의미의 '선물'로 인정해 기꺼이 받기가 힘들 것이다.
특히 편리성을 이유로 자연스럽게 현물에서 상품권으로, 상품권에서 현금으로 선물형태가 진화하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기업은 3류, 공무원은 2류

물론 이런 탁상공론으로 명절을 썰렁하게 만들 셈이냐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거론하는게 가족 친지, 오랜 친구 같은 1차적 집단 사이의 '정 나누기'까지 삭막하게 재단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1회 접대비한도 제한 같은 조치로 인해 가뜩이나 경기도 안좋은데 선물까지 하지 말자고 떠들어서 '내수'를 죽이려는 것이냐. 미국만 하더라도 크리스마스 선물 특수가 경기를 좌우하는데,,,"는 볼멘소리가 나올수도 있다.
그러나 명절 선물이 가져올수 있는 부양효과보다는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초래되는 불투명성과 특혜, 기업의 부담, 뒤틀린 사회인식의 고착화가 초래하는 불경제가 훨씬 클 것이다.

특히 언론에 오르내리는 공무원들의 명절 떡값이나 선물만 욕하지 말고, 이제는 우리 주변, 다시 말해 민간부문의 고질적인 선물문화를 우선 되돌아볼 차례가 된 듯하다. 농림차관의 경우에서 보듯 공무원들은 새 정권 출범할때마다 사정의 대상이 되고, 인터넷발달로 시민들의 감시도 매서워져 '좋은 세상 다 갔다'는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적어도 선물 관습과 이로 인한 부작용에 관한한, 민간부문이 3류고 정부는 2류 정도까지는 와 있다는 판단이다. 명절때마다 길을 가득 메우는 택배차량들은 대부분 (공기업을 포함한) 기업들의 거래처 사람 집들을 향하고 있지 않을까.

"회사 구매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아들이 결혼하게 됐다. 어머니와 며느리가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충돌하게 된 문제는, 명절 때마다 들어오는 100장이 넘는 구두상품권에 대한 관리권이었다"는 이야기는 웃고 지나갈 문제만은 아니다.

올 추석에는 LG 포스코 KT같은 주요그룹들이 선물 안받기 운동을 벌이고 암행감찰을 벌인다고 한다. 이마저도 기업이미지 홍보를 위한 대외용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민간부문에서 크고 작은 김차관 사례라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미리 쓰는 가상 댓글>

선물과 뇌물...'경제적 판별법'


선물과 뇌물...'경제적 판별법'
*위의 '니나잘해' '김칫국' '머니투데이 김준형' 명의의 댓글은, 독자 여러분을 대신해 제가 가상으로 묻고 답해 본 것입니다 ^^;; (실제 리플이 아니고 그림파일입니다) 점선 아래부터가 진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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