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발견한 책 중의 하나가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의 '남자 대 남자', '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이다. 이와 비슷한 책으로서는 전인권 성공회대 교수가 쓴 '남자의 탄생'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도 비슷한 유형의 책이다.
처음 이 책을 보면서 젊은 여자가 남성의 심리를 알면 얼마나 알까 하는 선입관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같은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보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현상을 심리학적 시각으로 보는데 대해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위협적인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을 때 나타나는 심각한 정신 병리 현상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거친 사람들이 겪은 질병과 비슷하다고 한다. 구조 조정을 겪은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한 중년 남성들 중에도 이런 탈진현상(burnout)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의욕도 에너지도 없고, 삶에 지쳐 힘겹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화를 낸다. 이렇게 힘든 삶에서 행복은 웬놈의 행복이냐는 것이다. 과도한 사회적 책임과 부담, 남자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 가장으로서의 의무...
휴테크 성공학으로 유명한 김정운 교수는 한국 중년 남성들은 단체로 자폐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자폐증이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남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는 병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탄주를 마시고, 술이 취해야 비로소 마음 문도 열고, 다른 사람과 얘기도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중년 남성 문제는 더 이상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위에 소개한 책은 이런 중년 남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남자의 탄생 같은 책은 어떤 과정을 통해 한국 남성들이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책을 읽어보면 중년 남성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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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년 남성은 너무 힘들다. 과도한 책임감, 가정에서의 소외, 자식과의 마찰, 동료들의 퇴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은퇴 후의 생활 대책 같은 근본적인 문제로 탈진해 있다. 맛이 가고 있는 중년 남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와 사랑이다. 그들의 아픔을 모른 채 그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살라고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이는 마치 뜻하지 않는 교통 사고로 아내를 잃은 사람에게 "지금이야말로 더 좋은 여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무책임하게 얘기하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에 공감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다. 그래야 정신적 황무지가 비옥한 토양으로 바뀔 수 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