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투기'없는 주택경기 활성화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장 2004.01.1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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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2년 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선(大選)에 뛰어들었을 때다. 정 후보는 경부고속도로 복층화 등 파격적인 선거공약으로 `역시 정주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특히 아파트 분양가를 절반 낮추겠다는 공약은 대권을 잡은 김영삼씨를 위협할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 정 회장이 대권을 잡는데는 실패했으나 분양가를 절반 낮추겠다는 그의 공약은 내집마련을 염원하는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리콴유(李光耀)가 지난 1965년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에 취임하면서 가장 신경 쓴 사안이 `물과 집`문제였다. 물을 말레이시아로부터 안정적으로 끌어들여 국민들에게 공급하는 것과 주택난 타개가 바로 그것이었다.

리 전 총리가 주택문제에 두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것은 국가경쟁력의 토대가 된다. 그는 우선 공무원들이 집을 쉽게 마련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공무원들에게 집마련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가에 청렴하게 봉사하고 보다 열심히 일하라는 배려였다. 그것이 곧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취지였다. 싱가포르 공무원들의 서비스 질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의ㆍ식ㆍ주(衣ㆍ食ㆍ住)는 삶의 기본이다. 미흡하지만 입고(衣) 먹는(食) 문제는 해결됐다. 집(住)이 문제다. 내집 한칸 마련하기가 너무 힘들고, `삶의 질`이 낮아져서다. 사교육비와 함께 내집마련은 서민의 삶을 고단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탈(脫)한국 열풍`을 낳을 정도다.

며칠전 모 부동산정보업체에서 도시근로자가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면 서울에서 32평 아파트를 장만하는데 23년 걸린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주목되는 것은 갈수록 내집마련 기간이 길어진다는 점이다. 집값 상승률이 가계소득 흑자 상승률을 웃돌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다른 점은 서민들이 허탈감을 느끼지 않게, 조국을 등지지 않고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살도록 집값과 소득 간 격차를 줄이느냐, 아니냐에 있다.


3월이면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출범한다. 장기저리에 돈을 빌려 집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10명 중 6.5명이 모기지론으로 집을 살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제도의 실패사례가 있다. 코모코(한국주택저당채권 유동화주식회사)가 바로 그것. 아파트 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수요자들이 코모코의 장기상품을 외면한 것이다. 불안한 주택시장과 현실을 따르지 못하는 금융제도가 코모코를 유명부실하게 만든 것이다.

실패사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실패원인을 꼼꼼히 살펴 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수요자에게는 부담을 덜어줘 `삶의 질`을 유지케 하고, 사업자에게는 맘놓고 사업을 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정부와 투자기관인 주택금융공사의 할 일이다. `투기`없는 주택경기 활성화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더불어 주택금융공사가 위인설관(爲人設官)이 되기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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