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경을 바라보던 한 누리꾼이 파격 제안을 했다. "유저들에게 영상 찾아오라고 한 뒤 보상을 주는 방식이면 어떨까. 메이플스토리의 경우 '메소'(게임 내 재화)를 어느 정도 준다고 하면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문제의 컷들을 찾아올텐데." 게임사도 그 같은 방식의 효율성을 모르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새벽에 현업 부서를 총출동 시켜 영상 전수조사에 들어간 데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던전연파이터 1주년 PV. /사진=유튜브 캡처
이번 사태와 비교적 무관한 한 게임사 관계자는 그 배경을 이렇게 짐작했다.
외주사 애니메이터 탓만 하기엔…못믿을 내부 동조자들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한 넥슨 직원이 남긴 글. /사진=블라인드
이번 사태와 관련된 한 게임사 직원은 "게임이라는 게 한두명이 아닌 여러 사람이 장기간 노력해 만든 결과물"이라며 "거기다 개인적인 신념을 반영해 많은 사람을 고생시키는 게 사회운동이겠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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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사가 아닌, 게임사 내부에도 이들에 대한 옹호 여론이 감지된다. '아트 부서'에서 일한다는 한 넥슨게임즈 직원은 "동료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누리꾼들이 오버한다'는 식의 의견을 내놓는다"며 "온 회사가 발칵 뒤집혔는데 그런 식으로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부서 내에는 그런 의견이 다수라 사무실에서는 동조하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게임사의 메갈 논란 '오래된 이야기'
클로저스 일러스트레이터의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던 남성혐오 논란 글. /사진=트위터(X) 캡처
과거 논란에 휘말렸던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억울한 면도 있다. 이번 사태처럼 작업물에 몰래 장난질을 친 게 아니라, 작업물과 별개로 자신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 메갈리아 옹호 글을 올리다 누리꾼들과 논쟁이 붙은 정도였다. 다만 당시에도 누리꾼들은 "남성혐오한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 남성 유저들 상대로 장사하는 게임사에서 돈을 받는다는 게 맞지 않는다"는 논리로 게임사에 항의했다.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계속 해줄게" 일베와 닮은 꼴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스튜디오 뿌리 애니메이터의 소셜미디어 글. /사진=트위터(X) 캡처
과거에도 '은근슬쩍 스리슬쩍'으로 여러 회사의 혼을 쏙 빼놓았던 집단이 있다.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다. 게임업계에선 2016년 '네시삼십삼분'의 이터널클래시가 유명한 사례다. 게임 속 챕터 4-19를 '반란 진압', 챕터 5-18을 '폭동'으로 이름 지으며 일베식 역사관을 '은근슬쩍 스리슬쩍' 드러냈다. 한 출판사는 도서 번역본을 내면서 '바보처럼 당했다'는 표현을 "민주화됐다"는 식으로 쓰다 물의를 빚기도 했다.
왜 이런 짓을 할까?
2013년 도서출판 미래인이 펴낸 미국 작가 제임스 패터슨의 '내 인생 최악의 학교' 번역본, 원작에는 'got dinked'라고 표현됐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조 이사는 "물론 그 같은 행위가 개인정보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 등으로 사회적 도덕률이나 법질서에는 맞지 않지만, 자신들끼리는 일종의 놀이가 되고 유희가 되는 측면이 있다"며 "돈벌이와 상관 없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주사 관리해도 제2, 제3의 손가락 방지엔 역부족
2017년 폐쇄된 메갈리아 대표 이미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외주사와 별개로 게임사 내부에도 이 같은 '손가락'을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는 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온갖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일베는 현재도 동시접속자가 1만여명이 넘는 거대 커뮤니티다. 메갈리아는 2017년 폐쇄됐지만, 이를 뒤잇는 것으로 알려진 '워마드' 역시 일베와 비슷한 규모이기에 모든 조직 구성원을 검열하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과거 일베가 '우리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식으로 업계에 공포를 조장했다면 이제는 '메갈' 역시 일베와 같은 요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개개인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한 선제적으로 이를 막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