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2000년대 오락실의 추억을 놓지 않고 사는 이들이 많다. 스트리트파이터2와 같은 대전 격투 게임은 철권으로 명맥을 이었고, 1945 같은 슈팅 게임부터 DDR, 펌프처럼 몸을 움직이는 게임까지 다양한 레퍼토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즐거움과 경쟁이 공존하던 흥미진진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학교와 사회에서는 청소년 탈선의 온상이라거나 학구열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기피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이들의 설렘과 우려가 공존하던 오락실이,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적어졌다.
2016년 5월 11일 오후 서울 도봉구 도봉구청에서 열린 '응답하라 1988 사진&체험전'을 찾은 초등학생이 '추억의 오락기'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대전 격투가 유행하던 당시 오락실 풍경은 100원짜리 동전을 걸고 싸우는 '배틀 로얄'과도 같았다. 패자는 조용히 자리를 떠나거나, 다시 동전을 투입해 도전에 나섰고, 승자는 '이기기만 한다면' 100원으로 오랜 시간 즐거움을 느끼며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오락실 주인들은 동전교환기에 동전을 채워넣느라 하루에도 수차례씩 게임기 안의 동전을 수거하는 게 일상이었다.
2020년 3월 1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오락실에서 송파구청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역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아케이드게임 사업의 높은 기계값도 업주들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기기 1대당 1000만원을 호가하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에도 수백만원씩 들어갔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자유롭게 게임 업데이트를 할 수 있고, 하나의 컴퓨터로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과 경쟁이 될 리 없었다.
'성인용'으로 옮겨간 아케이드 게임장, 바다이야기로 침몰
광주시가 성인오락실 156개소를 대상으로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린 2021년 2월 1일 광주 북구 공무원들이 북구 한 성인오락실에 집합금지 명령서를 붙이고 있다. /사진=뉴스1
이 시각 인기 뉴스
하지만 이러한 게임들의 '도박성'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바다이야기에 돈을 탕진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의 사례가 보도되기 시작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사행성 게임 전반에 철퇴를 내리기 시작했다. 성인용 사행성 게임을 노린 규제였지만 전반적인 아케이드게임 시장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신규 사업자는 나타나지 않고, 기존 업자들은 점포를 정리하면서 기기를 헐값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스티브 잡스의 결정적 한 방...오락실은 '고인물' 무대가 됐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스트리트 파이터 5’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관우가 지난달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번 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금메달리스트 김관우 선수만 해도 1979년생이다. 김관우와 결승에서 맞붙은 대만 선수도 동갑이라고 하니, 아케이드게임의 '고인물화'는 한국만의 일도 아닌 듯하다.
그나마 고인물들이 모이는 국내 오락실은 '성지'로 불리며 아직 남아있는 한줌의 아케이드게이머들을 불러들였다. 업자들도 게임 가격을 100→200→500원으로 올리며 수익성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대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전국 각지의 '성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2년 2월 강남 조이플라자, 2020년 6월 노량진 정인게임장의 폐업은 많은 아케이드 게이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오락실,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2012년 사라진 서울 신사동 조이플라자. /사진=머니투데이DB
아케이드게임업계가 가진 또 하나의 숙원은 '점수보상형'이다. 점수보상은 아케이드게임에서 특정 점수 이상을 달성하면 경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부 실내 낚시터에서 잡은 생선의 무게가 누적되면 경품을 지급하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아케이드게임의 점수보상제는 바다이야기 사태 당시 불법환전 등에 악용돼 2007년부터 법적으로 금지됐다. 다행히 2021년부터 규제샌드박스를 활용해 점수보상형 아케이드게임 시범사업의 발판이 마련된 바 있다.
다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킬러 콘텐츠'다. 이미 온라인 PC게임과 모바일게임에 익숙해진 이들을 아케이드게임장으로 돌려세울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하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VR(가상현실)게임은 아케이드게임 부흥의 열쇠로 여겨지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아케이드게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를 활성화해 테스트환경을 조성해준다면 향후 아케이드게임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