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이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공을 차며 뛰어다닐 때다.” 제시카 리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은 지난 1월 국내에서 열린 미디어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넷플릭스는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왔다. 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은 지난 3월 넷플릭스 국내 유료 이용자 수를 153만 명, 한 달 유료 결제액을 200억 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12월 90만 명이었던 유료 이용자는 3개월 만에 60만 명 이상 증가했고, 전체 유료이용자 중 20대가 39%, 30대가 28%, 40대와 50대 이상이 각각 17%로, 2030 청년층이 전체의 67%를 차지한다.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국내 순 방문자 수는 지난해 2월 48만 5천 명에서 올해 2월 240만 2천 명으로 1년 새 5배가량, 평균 체류 시간은 125분에서 306분으로 2.5배 늘어났다. 통신3사 중 유일하게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은 LG유플러스가 거둔 이익도 넷플릭스의 영향력을 방증한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1월부터 IPTV에 넷플릭스를 탑재, 1분기 동안 가입자 13만 명을 추가로 확보하며 3사 중 1위를 기록했다. LG유플러스는 “이용자 설문조사를 보면 가입에 가장 영향을 준 서비스로 넷플릭스를 꼽고 있다”라며 넷플릭스가 가입자 유치와 수익성 개선에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넷플릭스가 불러 온 콘텐츠 제작 환경의 변화는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대폭 올려 놓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료 방송 서비스를 해지하고 인터넷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코드 커팅’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면, 국내에서는 ‘한드(한국 드라마) 커팅’ 현상이 동반한다. 장르가 제한적이고 방송 사고가 잇따르는 국내 드라마에 실망한 이들이 넷플릭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방송 관계자 B는 “tvN ‘아사달 연대기’에는 54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CG나 세트의 질을 보면 도저히 납득이 불가능한 액수”라며 투자 대비 실망스러운 완성도를 지적했다.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 C는 “적어도 넷플릭스에서는 드라마가 CG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방송되는 일이 없을 것 같다”라며 방송 사고로 물의를 빚은 SBS ‘빅이슈’를 언급했다.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소재도 참신하고, 무엇보다 돈 들인 티가 나서 시각적인 것만으로도 만족이 된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 D는 넷플릭스의 방대한 자료량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넷플릭스는 국내 다른 OTT에 비해 다양한 장르와 국가의 콘텐츠를 볼 수 있고 오리지널 시리즈까지 독점 공개한다. 한국 드라마를 잘 보진 않지만, 볼만한 것들은 넷플릭스에 다 있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번역 및 판권 문제로 국내에서는 미국 넷플릭스만큼 많은 영상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넷플릭스 유료 이용자 E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 한 편이 만 원 이상이지만, 그에 준하는 퀄리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편하게 집에서 보는 데에는 한 달에 만 원도 들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언제까지 업계 최강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디즈니의 OTT인 디즈니 플러스가 넷플릭스와의 경쟁을 예고했다. 모 유튜브 채널 PD인 I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 플러스 구독 의사를 밝히고 있다. 넷플릭스는 픽사, 마블, 폭스 등이 제작한 콘텐츠가 디즈니 플러스로 옮겨갈 것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다음 무대가 모니터 밖 세상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넷플릭스는 지난 14일 나이키와 협업한 ‘기묘한 이야기’ 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굿즈 연계 가능성을 보여 줬으며 ‘기묘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액션 콘솔 게임과 AR을 활용한 모바일 게임, ‘다크 크리스탈: 저항의 시대’를 다룬 닌텐도 스위치용 게임 등 본격적인 게임 산업 진출을 앞두고 있다. 크리스 리 넷플릭스 인터랙티브 게임 분야 디렉터는 이에 대해 “우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영상 너머 다른 매체로 확장하기 위한 기회를 찾고 있다”라고 밝혔다. 디즈니 플러스가 넷플릭스의 OTT 자리를 노리고 있다면, 반대로 넷플릭스는 디즈니가 차지하고 있던 콘텐츠 시장을 겨냥 중이다. 경쟁의 결과는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제작 판도부터 미디어 수용자들의 인식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더 이상 모니터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