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는 누구나 외면하지만 누구나 보는 묘한 존재다. 사회의 공분을 산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54·구속) 사건은 이런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양 회장은 이른바 '웹하드 카르텔'을 구축하며 음란물 불법 유통 산업을 장악해 부를 축적했다. 경찰 수사과정 확인된 음란물 수익만 최소 70억원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음란물을 소비한다는 얘기다.
◇포르노=불법? 현실에선 男 응답자 100% '봤다'
포르노는 대법원 판례에서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어두운 분위기 아래 생식기에 얽힌 사건들을 기계적으로 반복·구성하는 음란물의 일종'으로 규정돼 있다. 종합하면 포르노는 성기 노출과 노골적 성 묘사 등으로 국내에서 합법적 유통이 불가능한 영상을 의미한다. 단순 소지만으로는 처벌받지 않지만, 유포·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정보통신망법 위반)이다.
금기시하는 문화와 달리 머니투데이가 이달 13일부터 19일까지 10~50대 260명(남성 154명, 여성 1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포르노가 일상 깊이 스며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 응답자 중 '포르노를 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239명(92%)이다. 남성 응답자는 전원이 '포르노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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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상당수(163명, 68%)는 '한 달에 최소 1번 이상' 포르노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초 시청 시기도 대부분 초등학생(79명)과 중학생(110명) 때로 조사됐다.
인터뷰에 참여한 시민들 중 165명(63%)은 국내 포르노 규제로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지나친 성인의 볼 권리 억압'(68명), '불법 촬영물의 범람'(85명), '해외 사이트 등으로 국부 유출'(12명) 등을 꼽았다. 포르노 합법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181명(70%)에 달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유모씨(30)는 "차라리 합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지나친 억압과 규제는 오히려 범죄와 같은 잘못된 방식의 욕망 분출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음란물 유포와 폭력 등 혐의를 받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54)이 16일 오전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서 수원지검 성남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양진호 사태'는 방치해 온 포르노 산업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여줬다. 우리 사회에서는 디지털 성폭력물은 물론 암묵적으로 용인되던 수입 포르노물조차 어떻게 관리할지 논의되지 않았다.
2015년 정보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정부는 웹하드 업체에 음란물 필터링 시스템 의무화를 주문했지만 하나마나 한 조치였다. 양진호 사태에서처럼 웹하드 업체가 필터링 업체를 함께 운영하며 카르텔을 형성했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검은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매년 국내 포르노 시장에 흘러가는 돈은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진지한 포르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법촬영 같은 범죄와 구분 짓는 성인물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봉조 법무법인 호연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포르노라는 단어 자체가 '성과 관련된 모든 나쁜 것을 포함해서 말하는 것'으로 인식된다"며 "이제는 건전한 성과 잘못된 성을 공론화해 얘기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야동(포르노)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순간부터 사실상 웹하드 업체에서는 올리고 내려받는 사업들이 시작됐다"며 "선진국 사례 등을 참고해서 어떤 수준으로 제도권 내로 이를 끌어안을지 등에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