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에 조상묘, 20년 지나면 내땅?…분묘기지권 논란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18.09.2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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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팩트체크] 2001년 1월 13일 이전 설치된 분묘에 한해 '분묘기지권' 인정돼…내 땅에 묘써도 장사법에 따라 신고해야

사진=뉴시스사진=뉴시스


지난해 1월 대법원(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김용덕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분묘설치자 B, C씨를 대상으로 땅주인 A씨가 제기한 분묘철거 관련 상고신청을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2013다17292)

A씨는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본인 소유 임야에 있는 6기의 분묘를 관리해 왔던 B, C씨를 상대로 분묘의 철거·이장을 청구했다. 분묘기지권 존속여부를 두고 이 판결에 이목이 집중됐었고, 최종적으로 A씨 청구가 기각돼 분묘기지권은 계속 인정되고 있다.



법령에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20년간 있던 분묘를 관리해왔다면, 묘를 수호하는 범위 내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에게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인 '분묘기지권'이 대법원 판례에 의해 관습적으로 인정돼 왔다. 민법상 다른 사람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권리인 '지상권(地上權)'과 유사한 것으로, 판례는 ‘지상권 유사의 물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불합리한 관습 vs. 조상 섬기는 윤리



분묘기지권의 인정 문제는 결국 어느 쪽의 권리를 우선시할 것인지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토지소유자의 재산권 보호를 우선하는 입장에서는 20년 간 남의 땅에 무단으로 묘를 설치해 일정 기간만 지나면 계속 그 땅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관습법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은 토지소유자의 재산권 행사에 중대한 침해를 야기하고, 토지의 한계 및 장례문화의 변경(화장 등)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고려할 때 이를 관습법으로 인정하고 있는 현재의 대법원 판례는 재검토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오랜 기간 존재해 온 분묘의 안정성과 선조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는 재산권에 견줄 수 없다며 분묘기지권의 존속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선조를 섬기는 윤리'는 소유권을 우선시하는 사상에 앞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2001년 1월 13일 시행 장사법, 분묘기지권 인정 안 해



분묘기지권을 내세워 이장에 반대하거나 이장비로 거액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분묘기지권은 부동산 시장에서 그간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봉분이 없던 땅에 갑자기 봉분이 조성되고 그 밑에 수십년간 조상이 매장돼 있던 무덤이 있다고 주장해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분묘기지권 주장을 못하도록 토지 소유자가 봉분을 없애는 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을 고용하는 일도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2001년 1월 13일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은 신설된 묘지에 대해 분묘기지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이전에 설치된 묘지다. 자신의 소유 토지에서 2001년 이전 설치된 남의 분묘를 뒤늦게 발견한 경우에는 20년의 시효완성이 되기 전에 해당 분묘의 관계자를 찾아 시효를 중단시켜야 한다.

제주도지사 선거 당시 문대림 후보 측이 제공한 원희룡 지사 가문 납골묘 현황도/사진=뉴스1제주도지사 선거 당시 문대림 후보 측이 제공한 원희룡 지사 가문 납골묘 현황도/사진=뉴스1
◇내 땅에 묘써도 신고절차 거쳐야

지난 6월 제주지사 선거에선 유력 후보들간에 조상묘 불법조성의혹 공방이 있었다. 원희룡 지사 부친이 설치했던 가문 납골묘와 문대림 후보의 모친 묘지가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성된 게 문제됐다.

서귀포시는 선거 뒤인 지난 7월, 두 건 모두 '이전명령'을 내렸다. 원 지사 가문 납골묘의 경우엔, 지난 2016년 6월 서귀포 색달동에 있는 타인 소유의 임야에 조성된 조상묘를 개장한 후 봉안시설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해당 조상묘는 분묘기지권에 따라 관리된 곳이었다. 따라서 이를 납골묘로 조성하면서 개장하면 분묘기지권이 상실될 수 있어 행정절차를 거쳐야 했다.

문대림 후보도 지난해 9월 가족 소유 토지에 모친의 묘지를 조성하면서 사설묘지 설치 신고를 하지 않았다. 장사법에 따라 자신 소유 토지에 개인 묘지를 조성하더라도 지자체장 등에게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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