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2인자' 즐겨찾던 산책로서 스스로 목숨끊어

머니투데이 양평(경기)=김훈남 기자, 한보경 기자, 양성희 기자 2016.08.26 16:00
글자크기

홀로 차몰고 나와 북한강변 산책로 초입서 극단적 선택

롯데그룹 2인자 이인원 부회장이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26일 오전 이 부회장이 숨진 장소로 알려진 경기도 양평군 한 산책로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br>
롯데그룹 2인자 이인원 부회장이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26일 오전 이 부회장이 숨진 장소로 알려진 경기도 양평군 한 산책로에 취재진이 몰려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서울을 빠져나와 15분여 차를 달리면 서울춘천고속도로 서종IC가 나온다. 서종IC에서 1㎞가량을 지나면 문호리 소재 북한강변 산책로 초입이 모습을 드러낸다. 롯데그룹의 '2인자' 이인원 부회장(69)은 마지막 운전을 해 이곳에 제네시스EQ 차량을 주차했다.

이인원 부회장은 전날 저녁 9시를 전후해 서울 용산구 자택에 귀가했다. 집 주변에서 그를 본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부회장은 한시간쯤 뒤인 밤 10시 직접 차를 몰고 북한강으로 향했다. 이튿날 오전 7시10분쯤 폭 5m 남짓한 산책로 초입, 일정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벚나무 밑에서 이 부회장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평소 즐겨 입지 않는 반바지에 남방, 점퍼를 입은 상태였다.



5~6년 전부터 이 회장과 친분을 맺었다는 양평군 주민 강건국씨(72)는 사건 현장을 찾아와 "이 부회장이 평소 부인과 함께 찾던 곳"이라고 말했다. 은퇴를 앞둔 고인이 10년 전 발생한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부인과 함께 산책로를 걸었다고 한다. 은퇴 이후 살 집을 짓기 위해 산책로 반대편 언덕 쪽, 북한강이 보일 만한 곳에 땅을 사뒀다고도 했다.

'롯데 2인자' 즐겨찾던 산책로서 스스로 목숨끊어
이 부회장은 최근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검찰 수사로 인해 괴로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는 "지난해부터 2차례 사의를 밝혔지만 회사가 어려워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 수사로 인해 괴로워 보였다"고 말한 강씨는 "평소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찾아와서 식사도 했는데, 수사가 시작됐다는 보도 이후 한달 가까이 모습을 못 봤다"고 덧붙였다.



차량에서 발견된 A4용지 4장짜리 자필 유서에서도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취지의 유언을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9시30분 롯데그룹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수사기관 안팎에선 검찰 수사로 괴로워한 데다 부인이 지병 악화로 수술을 하는 등 개인적인 악재가 겹쳐 이 부회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은 발견한 유서의 지문과 필적을 감정하는 한편 이 부회장의 시신을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의 자책에서 사건장소 주변 CCTV(폐쇄회로화면) 분석해 정확한 이동 경로와 동행자 유무도 확인한다. 현재까진 타살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그룹의 비리의혹 전반을 수사 중인 검찰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당초 신동빈 회장에 이어 2인자로 불리던 이 부회장을 상대로 비자금 의혹 전반을 추궁할 계획이었던 만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에 이어 총수일가를 조준하던 수사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검찰 관계자는 "소환을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 데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이 부회장의 자살로 수사 일정을 불가피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주말 동안 이 부회장의 부재상황에 따라 새로 수사일정을 짤 방침이다.

이 부회장의 빈소는 강원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을 마친 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현대아산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평생 회사를 위해 일한 고인을 예우하기 위해 롯데그룹장(5일장)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