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의 내부자들] ③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서울시'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5.11.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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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팩트] 경찰조사로 다시 본 서울시향 사건…부실에 협박까지 신뢰없는 내치기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초 서울시향 직원 17명이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대표를 성추행과 욕설을 한 안하무인 인격체로 몰아세우는 호소문을 발표했고, 언론들도 하나같이 호소문을 근거로 그녀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그럴듯한 주장과 내용은 다수의 구체적 진술로 힘을 얻었고, 1인이 방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추정이 사실로 둔갑하는데 힘을 실은 언론 보도는 지난 9월 현재, 160개 매체 3000여개에 이른다. 호소문에서 보여준 서울시향의 ‘내부자들’은 막강한 단합력으로 모두 입을 맞춘 듯 했으나, 막상 경찰 조사에선 서로 다른 말로 주장의 신빙성이 점점 떨어졌다. 사실이 뒤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번엔 다수의 주장과 호소문이 아닌, 박 전 대표의 인터뷰와 경찰 수사를 토대로 진실의 줄기를 좇았다.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취임한 지 1년 8개월쯤 지난 지난해 10월 중순쯤, 박 전 대표는 서울시 정무라인을 통해 11월 말까지 정리해달라는 요구를 전달받았다. 박 전 대표는 "내가 버티자 박 시장은 그해 12월 1일 오전 8시 광화문 식당에서당장 나가 달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박 전 대표가 "서울시향과 본인이 맞지 않는다"고 고사했을 때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던 모습에서 180도 달라진 태도다.<br>
/사진제공=서울시향. 머니투데이<br>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취임한 지 1년 8개월쯤 지난 지난해 10월 중순쯤, 박 전 대표는 서울시 정무라인을 통해 11월 말까지 정리해달라는 요구를 전달받았다. 박 전 대표는 "내가 버티자 박 시장은 그해 12월 1일 오전 8시 광화문 식당에서당장 나가 달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박 전 대표가 "서울시향과 본인이 맞지 않는다"고 고사했을 때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던 모습에서 180도 달라진 태도다.
/사진제공=서울시향. 머니투데이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가 오기 전까지 이 자리는 1년간 공석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명훈 예술감독 두 사람의 마음에 동시에 드는 인물이 그때까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혼연일체로 꼽은 인물이 박 전 대표였다.

박 시장 측은 박 전 대표에게 연락을 취해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여기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고사했다. 여러 번 고사했지만, 박 시장은 계속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2달 반을 넘겨 차 한잔 마시는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이 자리를 수락했다.



◇ “싫다”는 사람 앉혀놓고, “나가라”고 급히 종용

처음엔 잘 지낼 것 같았던 박 전 대표와 정 감독의 사이가 틀어진 걸 눈치챈 박 시장은 지난해 정 감독과 재계약 시점을 앞두고 박 전 대표에게 사퇴를 종용했다. 취임한 지 1년 8개월쯤 지난 지난해 10월 중순쯤, 박 전 대표는 서울시 정무라인을 통해 11월 말까지 정리해달라는 요구를 전달받았다. 직원 10명이 서명한 연판장을 증거로 정 감독을 비롯한 직원들이 박 전 대표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박 전 대표가 쉽사리 뜻을 굽히지 않자, 박 시장은 12월 1일 오전 8시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으로 박 전 대표를 불러내 “당장 나가달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그냥 말도 되게 간단했어요. 내일(2일) 직원들이 저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할 예정이니, 빨리 나가달라고 종용했어요. 지금 서울시 의회가 열리고 있는데, 제가 당장 나가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니 의회가 끝나는 12월 중순쯤 나가겠다고 하니, 당장 나가달라는 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삼고초려로 뽑았지만,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박 시장은 박 전 대표의 어떤 해명도 듣지 않고 “나가라”고만 종용한 셈이다. 박 시장과 정 감독이 신중에 신중을 기해 뽑은 자리라면, 내칠 때도 신중을 기해 의견을 듣고 사실을 찾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 부분을 거의 생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박 시장이 인선 문제에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재계약을 앞둔 정 감독의 심기를 고려해 사퇴 압박을 서두른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서울시향의 내부자들] ③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서울시'
박 시장은 지난해 12월 언론사 사회부장들과 오찬을 하면서 호소문에 근거한 박 전 대표에 대한 비난을 여과 없이 털어놨다. “그렇게 직원에게 꾸중을 해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 “폭언 등이 사실이라면 경영자로서 문제가 있다” 등이 그것이다.


직원 다수의 말이 오류일 수 있다는 가정, 변호사 출신의 시장이라면 상대방의 변명 하나라도 동등한 반론의 자격을 지닐 수 있다는 팩트의 신중론 등이 쉽게 간과된 것은 아니었는지 곱씹게 하는 대목이다. 자신이 직접 뽑은 대표에 대해 신뢰할 구석이라도 있었다면 ‘밖으로의 공개’보다 ‘안에서의 해결’이 더 절실하지 않았을까.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정 감독과 관련해 이런 말도 했다.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지휘자가 문제가 좀 있다고 하기로서니 배제해버리면 그 대안이 있느냐”라고. 대안없는 유명스타에겐 서울시민의 세금이 좀 새어나가도 괜찮다는 뜻인가. 후계자를 키우자는 제안이나 항공료를 법인카드로 쓰라는 요구가 유명 지휘자의 비리보다 더 정당하지 못하다는 뜻인지 되묻고 싶어지는 반문이었다.

◇ 인권센터 조사부터 홍보담당관까지 ‘부실’에 ‘협박’…원점에서 ‘재검토’ 필요

박 전 대표가 사퇴 압력을 받기 시작하던 10월 말, 서울시는 시향의 문제점도 함께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의 시향 사조직 문제를 비롯해 항공료 의혹 등 각종 문제점을 11월 초 이메일로 보냈지만, 서울시는 시의회의 특별 조사내용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서울시 인권센터 시민인권보호관은 지난해 12월 23일 ‘호소문이 사실’임을 직시한 결정문을 발표하고 서울시 인권센터 사이트에 게시했다. 올해 초엔 ‘인권센터 결정례 책자’로 만들어 인권강사 양상 교육 교재로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추행 혐의 인정이 어렵다는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 서울시 인권보호관이 2주일 만에 직원들 조사를 토대로 박 전 대표를 가해자로 취급한 것에 대해 서울시 의원은 인권을 침해한 성급한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센터의 성급한 결론은 익명 17명 모두 확인하지 않고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한 명도 조사하지 않은 데다, 참고인 진술에서 내용이 거짓으로 확인된 사항(‘출장시 들었다’→‘출장자 없음’) 등 기초 사실 확인의 부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서울시가 취한 조치 중 박 전 대표가 겪은 가장 황당한 일은 그녀가 해명 기자회견에서 받은 ‘찌라시’였다. 당시 시향 홍보팀장이 당시 서울시 언론담당관으로부터 전해 받은 ‘찌라시’엔 ‘박 전 대표 9년 이혼소송 70억 챙겨’라는 제목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대표님 언론 접촉 못 하시게 해라. 신상털기 들어간다”는 설명도 추가됐다. 이혼한 건 맞지만 돈 한 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법원 기록에도 나와있다. 당시 시향 홍보팀장은 무슨 이유인지 올해 8월 팀원으로 강등됐다.

당시 서울시 언론담당관은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짧게 답했다. “그런 적이 없다”, “말도 안된다”가 아니라 “기억이 없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던져 궁금증을 부채질했다.

서울시장과 서울시 관계자, 서울시 인권센터 등이 정명훈 예술감독의 재계약 시점을 두고 벌인 일련의 급행열차 속도의 박 전 대표 사건 해결 과정은 여전히 의혹투성이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그녀가 ‘무혐의’를 받은 것만으로도 이 사건은 원점에서 ‘공평하게’ 다시 진행돼야 한다. 그것은 또 ‘인권’을 그토록 강조하고 외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기본 철학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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