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PEF 살림꾼'의 무기는 섬세함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14.05.1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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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장진희 IMM PE 상무(CFO) "여성의 디테일, 복잡한 PEF에 적합해"

PEF(사모투자전문회사) 업계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자본의 세계'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전쟁터에서도 여성의 섬세함은 분명한 경쟁력이다. 특히 조 단위 투자세계의 복잡한 재정을 책임지는 운용사 내부의 재무회계 분야에선 디테일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장진희 상무(CFO)는 국내 최대 토종 PEF 운용사인 IMM프라이빗에퀴티의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IMM은 국민연금기금과 군인공제회 등 국내 연기금은 물론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 자금까지 위탁받아 운용하는 톱클래스 투자사로 평가된다.



2006년 설립된 IMM은 최근까지 20개 기업에 1조3000억원의 자금을 투자했고 2012년에 7360억원 규모의 PEF 'IMM로즈골드2'를 설립하며 명실상부한 최강자로 올라섰다. 현재 금융회사 계열을 제외한 독립 국내파로 7000억원 이상을 모은 운용사는 IMM이 유일하다. 운용 실적은 IMM인베스트먼트까지 합쳐 2조원에 육박한다.

92학번으로 연세대를 졸업한 장 상무는 1996년 삼성SDI에 입사했다. "독문학을 전공해서 상대 출신에 비해 입사가 불리할 수도 있었지만 삼성에 지역전문가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독일 전문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펼쳤더니 덜컥 합격했더라고요." 꼼꼼한 준비를 눈여겨본 국제금융 부서장이 그를 뽑은 것이다.



삼성SDI (408,500원 ▼5,000 -1.21%)는 브라운관과 모니터 제조사였지만 장 상무가 있던 국제금융 부서는 대부분 해외 신설법인의 생산기지 설립 및 운영자금 조달을 도맡았다. 해외에서 FRN(변동금리부 채권)이나 신디케이트론으로 자금을 모아서 신규 해외법인에 대주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2000년까지 5년간 정신없이 일을 배우고 뛰어다녔다.

그러다 2001년 2월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고민이 몰려왔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밤낮과 휴무가 구분되지 않는 대기업의 업무를 그 역시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자금조달 업무가 환헤지와 유동성 관리로 바뀐 것도 일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 요인이었다.

이직을 결심한 그는 "당시 벤처 붐이 일었는데 벤처기업은 직업적 안정성이 크지 않았고 대신 벤처캐피탈에서 자금관리를 해보자"는 생각을 가졌다. 마침 직장 선배가 그의 일처리를 눈여겨보고 권유한 곳이 바로 당시 창업투자 업무를 주로 했던 IMM인베스트먼트였다. 이직 초기엔 당시 구조조정 조합의 관리와 부실청산 등을 주로 맡았는데 투자사 실적의 급등락에 따라 고초도 많이 겪었다.


"한번은 실패한 투자사의 장본인과 지방 형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억울한 부분을 실컷 얘기했더니 검사가 알아서 고소하라고 하고선 그분과 같은 차를 태워 돌려보냈어요. 상경하는 내내 해코지 당하지 않으려 얼마나 아부를 했는지 몰라요."

'2조 PEF 살림꾼'의 무기는 섬세함


2008년 IMM이 PEF 사업을 시작하면서 장 상무도 사모펀드 사업부로 옮겨왔다. PE 시장에서는 국민연금 등 공공기금을 성격의 자금을 다루는 터라 더 신중하게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장 큰 보람은 역시 위탁자금을 불려 청산할 때 느낀다.

"펀드 관리와 투자사 사후관리가 제 책임인데 최선을 다해서 성과가 나고 연기금 실무자들이 '수고했다'고 한마디 말해주면 더 이상 뿌듯할 수 없어요."

지나온 사회생활만 보면 전형적인 엘리트 우먼 같지만 가정에서 더 열심히 일하는 슈퍼맘이다. 1998년 결혼해서 2009년까지 시아버님을 모시고 살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암투병 수발을 든 효부로 유명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손사래를 친다.

"제가 모시고 살았다기보다는 제가 얹혀살았던 것 같고요. 아버님께서 제가 일할 때는 눈에서 빛이 난다 하시면서 오히려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 것이에요."

2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것과 가사일 중에 어떤 게 더 어렵냐는 질문에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후자를 택했다. "둘 다 굉장히 복잡한 것을 끌고 나가야 하는 일인데 가사는 제 스스로 계획을 세워야 하고 중간 단계가 명확히 없으면서도 평가보상은 스스로 찾아야 하니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중학교 1학년이 된 아들과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는 것이 장진희 상무의 목표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는 엄마가 워킹맘인지라 학급임원이 되는 것을 반대할 때마다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중학생이 돼서는 오히려 더 일찍 철이 들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엄마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PEF를 책임지고 있고 이런 일이 사회를 변화하게 하는 것이라고 항상 얘기하니까 복잡한 금융을 잘 모르더라도 아이들이 요즘엔 자랑스러워 해줘 너무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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