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홍 얘기 남일 아냐" 가족 탓에 피눈물 흘려도 '처벌 불가' 왜?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이세연 기자 | 2022.10.16 07:00

[MT리포트]가족이란 이름의 면죄부, 69년 낡은 친족상도례(상)



'잔인한 핏줄' 엄마 병원비 얘기에 날린 집…박수홍만이 아니다




"가정 내부 문제에는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법 취지가 있다."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

헌법재판소의 2012년 합헌 결정은 최근 방송인 박수홍씨 친형의 횡령 혐의 사건으로 불거진 친족상도례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족형 재산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숨은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4월 "공무원인 직계혈족에게 재산을 편취당하고도 친족상도례 규정에 따라 형사처벌은 물론 징계처분도 불가능하게 됐다"며 청구된 헌법소원 사건은 아예 판단하지도 않았다.

대법원은 한발 더 나가 2013년 친족상도례를 형법상 재산범죄는 물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재산범죄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례는 지금도 유효하다. 2014년에는 어머니의 서명과 날인을 이용해 자신에게 2000만원을 빌렸다는 가짜 차용증을 만들고선 돈을 갚지 않는다며 소송까지 제기했던 60대가 1·2심에서 사기미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이 친족상도례 규정을 들어 파기환송한 사례가 있었다.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등 친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의 형을 면제하는 규정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때 입법된 이후 69년 낡은 규정이 재산을 갈취하는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나 친척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빗발치지만 지난해 6월 사기·공갈·횡령·배임 등의 장애인 학대 범죄에 대해 친족상도례 적용을 배제하는 특례(장애인복지법 제88조의 3, 올해 시행)를 신설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제대로 손본 적이 없다.

법도 법이지만 판례까지 이렇다 보니 친족상도례의 부작용이나 피해 사례에 대한 실태조차 온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2019년 경찰에 접수된 사기사건 24만6160건 가운데 가해자가 가족(동거 친족·기타 친족)인 사건은 431건에 그친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접수된 친족상도례 관련 상담 건수도 2017년 299건, 2018년 630건, 2019년 356건, 2020년 256건, 2021년 225건으로 비슷하다. 올 들어 접수된 상담은 지난달까지 214건이다.

이 숫자가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고 믿는 전문가는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친족상도례를 이유로 처리하지 않은 사건은 별도로 집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수홍씨 사례가 알려진 데는 유명인이라는 점이 작용했지만 박씨에 못지 않은 경우를 당하고도 속만 태우다 끝나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특히 노인이나 장애인의 경우 의사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거나 자식을 두둔하느라 피해를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본다. 소송하거나 신고하는 일이 워낙 드물다 보니 가족이 아닌 사람이 아는 것부터 현실적으로 어렵다.

머니투데이가 인터뷰한 피해 노인들 중에서도 오히려 "내가 줬다"고 가해자를 감싸는 경우가 적잖았다. 지난해 명의도용으로 3000만원의 대출 빚을 지고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한 70대 김모씨는 어렵게 성사된 전화 인터뷰 도중 "자녀들에게 뺏겼다"는 말에 불쾌감을 표하며 통화를 중단했다.

속앓이 끝에 범죄 사실을 알려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도 피해자들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사건이 집안 내부에서 정리할 가정사 정도로 치부되다 보니 수사기관도 의지가 없다. 50대 이모씨는 남동생 부부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집을 팔아 병원비를 마련하겠다고 해놓고 잠적하자 지난해 11월 법률구조공단에 상담을 요청했지만 처벌 등을 포함해 이렇다할 방법을 찾지 못해 밀린 병원비 4000만원을 대출해 지불했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가족이 재산을 가로챘다는 상담 사례가 접수되더라도 대부분 친족상도례 때문에 고소하지 못한다"며 "피해자는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 돼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족에 대한 배신감에 더해 재산 손실과 처벌 불가에 따른 억울함까지 삼중고를 겪는 셈이다.

친족상도례를 두고 잊을만하면 헌법재판소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게 이 때문이다. 2012년에 이어 2020년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현우 변호사는 "친고죄나 반의사 불벌죄로 재량의 여지를 둘 필요가 있다"며 "가족이나 친인척 관계라는 이유로 기소조차 못하고 처벌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현재의 조항은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이달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친족상도례 규정과 관련한 질문에 "지금 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 빼앗은 조카, 10억 갈취한 아들…친족상도례 '면죄부'




"이모, 밥 먹으러 가요"

치매 노인 이순희씨(80·가명)는 2020년 10월 외조카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자신 소유의 아파트를 뺐겼다. 조카는 몇 달 전 갑작스레 이씨를 찾아왔다. 30년 전 유일한 가족인 아들과 연락이 두절된 뒤 처음 닿은 혈육의 연락이었다. 조카는 치매가 있는 이씨를 보호해주겠다며 통장과 신분증, 인감도장 등을 자신이 관리하겠다고 했다. 이씨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조카는 막무가내였다.

이씨와 함께 외출한 조카는 부동산 거래를 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를 만들어주겠다며 이씨가 살던 8000만원 상당의 아파트를 자신의 명의로 등기이전하고 6500만원에 팔아치웠다. 조카는 이씨의 통장에서 매달 100만~200만원을 출금했다. 이씨는 치매 탓에 인지·판단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조카의 만행은 이웃의 신고로 드러났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에 대한 경제적 학대로 판단하고 조카에게 넘어간 아파트를 이씨에게 돌려줬다.

하지만 조카는 형사처벌을 피해갔다.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씨가 조카를 직접 고소해야 하지만 명의를 변경할 때 동행했던 사실이 이씨에게 불리했다. 이씨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고소를 계속 진행하기도 어려웠다. 이씨는 치매 악화로 지난 5월 요양원에 입소했다.

가족간 경제적 착취에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되면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믿고 의지하던 가족에 대한 신뢰를 잃고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 고통은 미래에도 이어진다. 시간이 지나 몰랐던 부채를 발견하거나 통장이 압류되는 등 삶이 망가진다. 가해자들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처벌받지도 않는다. 형법 328조에서 정한 친족상도례가 면죄부다.

이씨 사건을 담당한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이씨의 정신이 잠시 돌아왔을 때 조카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고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며 무력감을 느끼더라"며 "형사 처벌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친족상도례 때문에 직접 고소해야 했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고소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아들이 10억여원을 훔쳐가고 빚까지 안겼지만 당하고만 있어야 했던 80대 노인도 있다. 치매 초기 환자인 김정숙씨는 남편을 일찍 잃고 홀로 1남 4녀의 5남매를 키웠다. 김씨는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평생 일군 재산 중 20억원을 아끼던 막내아들에게 증여했다.

막내아들은 잇단 사업 실패로 재산을 모두 잃자 김씨의 통장에 손을 댔다. 김씨의 은행 예금 10억원을 동의 없이 사용하고 김씨 명의의 아파트를 담보로 8000만원을 대출 받았다. 김씨는 병원비와 간병비를 내지 못하는 상황까지 몰렸지만 막내아들은 회피로 일관했다. 친족상도례로 잃은 돈을 되찾을 수도, 아들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치매 환자나 노인만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니다. 중년 부모부터 아동까지 가족이 재산을 가로챘다는 상담 요청이 빗발치지만 대부분 친족상도례 때문에 고소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셈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접수된 친족상도례 관련 상담은 2017년 299건, 2018년 630건, 2019년 356건, 2020년 256건, 2021년 225건을 기록했다. 올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214건이 집계됐다.

부모가 자식에게 빚을 지워도 처벌할 수 없다. A씨는 이혼한 전 남편이 아이 명의로 인터넷과 핸드폰을 개설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아이에게는 500만원의 채무가 생긴 상황이었다. A씨는 전남편을 사기로 고소하려 했지만 피해자가 전 남편의 직계가족인 아이라서 친족상도례가 적용됐다.

B씨는 딸이 자신의 통장에서 2억5000여만원을 빼내 남자친구에게 준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딸을 절도죄로 신고하려 했지만 친족상도례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장에서는 친족상도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가 크다. 일부 변화도 있다. 국회가 지난해 장애인 학대 범죄에는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도록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했고 올해 시행됐다.

고명균 한국장애인개발원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은 "장애인을 상대로 한 범죄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노인 등 취약계층을 향한 가족의 경제 착취는 발생하고 있다"며 "법망을 피한 착취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만큼 현실에 맞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피해를 인지하고도 고소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신한 가족 외에 다른 보호자가 없어 고소 이후의 삶을 걱정하는 경우다. 어렵게 고소하고도 의사가 무시되거나 고소능력이 부인되는 상황에 마주치기도 한다.

후견 관련 사건을 다수 수행한 전창훈 법무법인 진성 변호사는 "대다수가 가까운 가족이 재산을 횡령하거나 배임했다는 의혹으로 시작한다"며 "제3자였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 행위인데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사 사건이 되지 않으니 과거의 피해는 포기하고 앞으로의 피해라도 방지하자는 차원의 후견인 신청"이라고 설명했다.

전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인지능력이 떨어져 상황에 대한 이해가 어렵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친족상도례로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계속되는 만큼 시대적 흐름에 맞는 규정인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주의·유교사회 잔재?…박수홍 울린 '친족상도례' 고향은 '로마'




방송인 박수홍씨 친형의 횡령 혐의 사건으로 논란이 된 친족상도례 규정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일본 형법에도 있는 제도다. 가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해 가정 내부의 자율적 해결을 우선한다는 사고가 반영됐다. 이른바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다.

유교주의와 가족공동체를 중요시하는 동양 문화권의 색채가 짙어 보이는 제도지만 고대 로마법 체계를 이어받은 나라에 주로 존재한다. 로마법에서는 가장이 가족의 지배자로 가정에서의 형벌을 지정할 수 있었고 생사여탈권까지 결정했다. 이런 가장의 권한을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라고 했다. 유교적 관습에서 형벌권은 군주의 권한으로 친족간의 범죄라고 면죄하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근대 형법에서는 로마법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대륙에 친족상도례가 일부 남아 있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유럽 대륙법 체계를 받아들인 일본을 거쳐 친족상도례 규정이 도입됐다.

프랑스에서는 존속, 비속, 동거 중인 배우자에 대해 공갈·사기·횡령으로 처벌하지 않는 친족상도례를 적용한다. 배우자의 경우 별거 중이거나 별거를 허가받았다면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범위가 좀더 넓어 양부모나 후견인, 보호자, 주거공동체 구성원끼리의 절도·횡령·사기·배임 등은 고소해야만 처벌한다. 처벌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진 않지만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로 다루면서 범위는 더 넓힌 방식이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경우도 비슷하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친고죄로 처벌하지만 형은 감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형법에 영향을 강하게 미친 일본에서는 1947년 동거가족을 친족상도례 범위에서 제외했다. 절도·부동산침탈죄 등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범죄 범위도 우리보다 좁다. 대한민국 형법은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배우자의 절도·사기·공갈·횡령·배임 등 상대적으로 친족상도례 범위가 넓고 형 면제가 포함돼 가해자에게 유리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우리 형법에서도 배우자의 혈족, 즉 사돈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사돈을 친족으로 보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1990년 민법 개정으로 사돈은 친족의 일종인 인척에서 제외돼 법적으로 친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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