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삼성·현대차 말고 뭐있어요?…'브랜드 파워' 발목 누가 잡나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오진영 기자 | 2022.06.21 07:30

[창간기획]금융위기에서 코로나까지…글로벌 기업 10년의 흥망성쇠(下)



갈길 먼 韓 브랜드 파워…삼성·현대차 다음이 없다




'기업은 제품을 팔지만 소비자는 브랜드를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브랜드가 가진 힘이 중요해진 시대다. 브랜드의 파급효과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소비자는 비싼 제품이라도 선호하는 브랜드를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신제품이라도 기존에 알던 브랜드명이 붙어 있으면 신뢰한다. 브랜드가 곧 기업 경쟁력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브랜드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기업이 마주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삼성과 현대차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최근 10년 사이(2011~2021년) 유의미한 성장세를 보인 기업을 찾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새 수요를 창출해 선점하는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 역시 규제 완화와 함께 체계적인 국가브랜드 관리로 기업을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글로벌 100대 브랜드…한국 기업 1곳 늘었지만

20일 머니투데이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브랜드 가치 평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글로벌 100대 브랜드 순위는 디지털 전환이란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굵직한 변화를 겪었다. 미국·유럽 기업 중심의 주류 질서는 유지됐지만 IT(정보통신)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가 급성장했다.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코카콜라가 2013년 애플에 자리를 내준 것은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애플은 최근 자료가 나온 지난해까지 9년 동안 선두 자리를 유지했다. 애플의 뒤로 아마존과 MS(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따른다. 10년 전 최상위권을 유지했던 IBM, GE(제너럴일렉트릭) 같은 전통 제조기업의 순위는 하락했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새 플랫폼을 창출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우버 등이 새로 100대 브랜드에 진입했다.

한국 기업의 성적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뒤처지는 양상을 보였다. 2012년 기아가 새로 추가되면서 지난해 기준 100대 브랜드에 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지만 경쟁국에 비해 전반적인 존재감이 옅어졌다.

한국에 비해 중국은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중국과 한국의 전년 대비 50대 브랜드 가치는 각각 47%, 3.9% 늘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토요타·혼다·소니·닛산·닌텐도·캐논·파나소닉 등 7곳이 100대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 다음이 없다…유의미한 성장세 삼성·현대 뿐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의미한 성장세를 보인 곳은 삼성과 현대차 2곳에 그친다. 삼성은 디지털 전환 속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2011년 17위에서 2020년 글로벌 '톱5'에 올랐다. 지난해에도 746억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받으며 5위를 유지했다. 10년 사이 브랜드 가치가 218% 늘었다. 현대차도 10년 사이 순위가 26계단 상승했다. 지난해 순위는 35위로 브랜드 가치로 152억달러를 평가 받았다.

두 기업을 제외하면 내세울 브랜드 파워가 마땅치 않은 게 한국의 현실이다. 국내에서 새로 등장한 IT기업의 성장이 대체로 한국 시장에 제한된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세계 경제가 미국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한계가 있지만 국내 기업의 사업 확대가 각종 규제에 가로막힌 영향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삼성과 현대차를 제외한 대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유지 또는 약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2012년 87위로 100대 브랜드에 진입한 기아의 경우 2017년 69위까지 올라섰다가 이후 줄곧 순위가 하락하면서 지난해 86위를 기록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대기업은 다수의 중소·중견기업과 협력사 관계로 묶여 있다"며 "한국 주요 기업의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대기업 제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 피해는 국내 사업 전반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新)시장 창출해야…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전문가들은 브랜드 가치 강화를 위해 무엇보다 시장 선도 제품과 서비스를 내놔야 한다고 조언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시장의 숨은 요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가치가 높은 브랜드의 공통점은 각 상품군의 최초 브랜드라는 점"이라며 "기존 수요를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자세보다는 새롭게 가치를 창출하고 시장을 선점하려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탈리아 기업들이 제품과 예술을 접목해 독보적인 가치를 제시한 사례를 예로 들며 "한국의 경우에도 한류가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3월 발간한 '해외바이어의 한국 국가브랜드 및 한국제품에 대한 인식 조사' 보고서에서 정부가 국가브랜드에 대한 체계적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력한 국가브랜드가 기업과 제품의 브랜드 가치와 제품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문선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국가 차원의 한국 브랜드 담당 조직과 관리 정책은 2013년 이후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지 않다"며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국가브랜드 전담 조직을 창설하고 기업과 협력해 국가브랜드 홍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네카라쿠배는 천재일우, 또 멈추면 정말 끝난다




/사진 = 임종철 디자인기자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로 불리는 국내 플랫폼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세안 전역으로 사업 영토를 확장하고 있고 수백만~수천만명의 이용자 수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 IT 업계 취준생의 선망이 됐다는 점 등이다. 이들 기업은 규제 일변도의 정책과 협소한 플랫폼 시장 등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의 강점을 내세워 대표 IT서비스 기업이 됐다.

업계에서는 제2의 네카라쿠배를 이끌어내려면 더는 혁신과 규제 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규모가 커지고 있는 IT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길러내기 위해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고 민간 주도의 경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 3대 신산업으로 꼽히는 온라인 플랫폼 산업이 활성화될수록 소비자 이익이 증대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네카라쿠배의 급속한 성장을 이례적인 성과로 평한다. 자체 플랫폼으로 배달·택배·메신저 등 여러 분야에서 가파른 성장을 거듭했다는 점에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시장은 외국에 비해 정책적 제한이 많지만 (네카라쿠배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통해 시장에 안착했다"며 "IT 서비스 등 신산업 저변이 미약한 국내에서 이들 기업의 출현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은 최근 몇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국내 주요 기관의 규제 강화 움직임으로 몸살을 앓았다. 국회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과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겠다며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안과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잇따랐다.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방통위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는 네카라쿠배 대표들이 줄줄이 불려나갔다.

문제는 이 같은 규제 움직임이 기업의 독과점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 진입을 막아 신산업 육성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과도한 규제는 경쟁 자체를 틀어막고 신산업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과 똑같다"며 "플랫폼 기업이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사회 인식과 이에 기반한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제2의 네카라쿠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비대면 수요를 넘어선 새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국제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의 IT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IT시장 규모 5318조원에 비해 국내 시장 규모는 100조원대로 2%에 그친다.

정부는 지난 14일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앞두고 신산업 분야 규제 33건을 개선하는 등 규제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IT업계에서는 늦었지만 불합리한 규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해외 시장에 비해 국내 IT 기업들의 규모가 작은 데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가 기업들의 성장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 주도의 자율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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