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주 52시간제를 실시하는 50~299인 사업장이 최대 1년 동안 처벌을 유예받는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업무량이 확 늘어난 기업은 주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을 초과해 일을 할 수 있다. 인력이 더 필요하나 구인난을 겪는 기업은 외국인을 더 고용할 수 있게 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의 '입법 불발 시 주 52시간제 보완대책 추진방향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보완책에는 법 개정 없이 행정부 차원에서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됐다. 정부·여당이 주 52시간제 대응수단으로 밀고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내놓은 '플랜B'다.
고용부는 우선 보완책으로 충분한 계도기간 부여를 제시했다. 계도기간은 9개월에서 1년으로 예상된다. 고용부는 지난해 7월 주 52시간제를 먼저 시행한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계도기간(총 9개월)보다는 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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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99인 사업장에 '충분한 계도기간' 부여━
계도기간은 100인 이상 기업, 100인 미만 기업으로 구분돼 적용된다. 소규모 기업일수록 주 52시간제 준비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주 52시간제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기업은 우대받는다. 300인 이상 사업장도 6개월은 일괄 부여한 뒤 주 52시간제 개선 계획을 수립한 곳에 추가로 3개월을 연장해줬다.
계도기간은 주 52시간제가 사실상 미뤄지는 효과를 낸다. 이 기간 동안 고용부가 주 52시간제 위반 기업을 단속하지 않아서다.
당초 고용부는 계도기간을 못 박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녹실회의를 통해 '충분한 계도기간 부여'로 발표 수위를 완화했다. 주 52시간제 대응방안을 논의 중인 국회 입법권을 침범할 수 있다는 비판을 의식했다. 당장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고용부 발표 직후 "정부·여당이 탄근제 보완입법을 훼방놓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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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일 늘어난 기업, 주 연장근로 12시간 초과 허용━
고용부는 탄근제 입법이 성사되더라도 계도기간을 부여할 계획이다. 정부·여당 의도대로 탄근제 최대 단위기간이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나더라도 하위법령 작업 등 실제 시행까진 3~4개월 걸려서다. 단, 이 경우 계도기간은 입법 불발 시보다 줄어든다.
고용부는 또 시행규칙 개정으로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에 경영상 사유를 추가하기로 했다. 현행법상 근로자가 동의해도 법정근로시간(40시간)에 주당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는 금지된다. 특별연장근로는 자연재해, 재난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고용부 장관 인가를 거쳐 주당 연장근로를 12시간 넘게 허용하는 제도다.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업무량이 갑자기 늘어난 기업에 숨통을 틔우기 위한 조치다. 앞서 고용부는 일본 수출규제,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응해 일이 몰린 기업에 특별연장근로를 확대 적용한 적 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요건 완화는 50~299인 사업장 뿐 아니라 모든 사업장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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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난 겪는 기업, 외국인 더 뽑는다━
만약 국회에서 특별연장근로 완화 법안이 통과되면 비슷한 내용인 고용부 대책은 철회된다. 탄근제 단위기간 확대와 함께 특별연장근로 완화 법안도 한 세트로 논의해야 한다는 게 야당 입장이다.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특별연장근로 인가요건 확대를 시행 규칙이 아닌 법률로 명시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제조업 사업장별 외국인 고용허용한도(E-9)는 한시적으로 20% 상향 조정된다. 중소기업이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라 모자라는 인력을 외국인으로 채울 수 있도록 한 조치다. 현재 사업장별로 외국인 근로자는 사업장별로 5~30명을 고용할 수 있다. 또 조선족, 고려인 등에 적용되는 서비스업종 동포(H-2) 허용 확대도 추진한다.
일각에선 내국인 일자리가 빼앗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내국인을 일정 규모 이상 뽑은 기업이 외국인 채용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뿌리산업 같이 내국인이 일하기 꺼리는 사업장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내년 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현장 불확실성과 중소기업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추진하겠다"며 "행정조치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한계가 있어 정기국회에서 탄력근로제 개선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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