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A씨를 '김 대표'로 부르며 '부담 없는 활동'을 약속했지만, 민간인 사찰 지시는 구체적이고 집요했다. 호칭만 대표였지 노예처럼 부렸다는 것이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의원 출신인 A씨는 국정원의 지시를 받아 2015년부터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민간인을 사찰했다.
우선 A씨에게 제공된 것은 옆으로 맬 수 있는 가방과 녹음기였다. 국정원에서 건넨 가방은 녹음기를 거치할 수 있도록 3중으로 비밀 공간이 특수제작 돼 있었다.
A씨는 "(국정원 직원이) 녹음기 등 장비를 건네며 '이게 통합진보당 해산시킬 때 썼던 제품'이라고 했다"며 "녹음기 가방을 들고 선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녹음한 것을 국정원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을 감시하기 위한 거점도 마련해줬다. 지방에 사는 A씨가 서울에 자취방을 얻은 것처럼 위장해 활동가들을 끌어들여 머물게 했다. A씨는 "그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대상과 지시는 구체적이었다. 사무실 보증금 등 A씨가 핵심 정보를 얻어낼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A씨가 양심의 가책 등으로 사찰 활동을 하지 않으면 이내 태도가 돌변했다.
A씨는 "매주 또는 격주로 수원에 있는 국정원 사무실에 가서 진술서를 썼는데, 그들(사찰 대상자)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진술하는 방법을 알려줬다"며 "국정원 근처 광교 이마트에 차를 대면 국정원이 나를 그들의 차에 태워 건물에 들어가는 식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A씨는 "한번은 지인 결혼식에서 사찰 대상자를 만나 연락처를 교환하고 술자리를 가졌는데 보고하지 않자 이 사실을 물어봤다"며 "내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내 행적을 지켜보고 있던 것"이라며 자신을 감시하는 느낌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학생운동 조직에 매끄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A씨에 대한 북한의 주체사상 교육도 국정원이 직접 진행했다. 오히려 사찰 대상자들은 주체사상보다는 지역 인구 감소 문제를 주로 논의하는 등 괴리가 있었다.
A씨는 "내가 주체사상을 너무 모르면 그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다면서 국정원 직원이 부산의 한 호텔에서 직접 주체사상을 가르쳐줬다"며 "북한에서 만든 원서를 학습교재로 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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