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산업의 전설, 아이아코카 별세

머니투데이 김수현 기자 | 2019.07.03 15:49

1970년대 말 정부 지원 이끌어 크라이슬러 기적적으로 회생시켜…소형차 개발 나서며 큰 인기 얻기도

리 아이아코카 전 크라이슬러 회장. /사진=로이터
"(크라이슬러보다) 더 좋은 차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차를 사라."

크라이슬러 광고에 직접 출연해 이 같은 말을 남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전설' 리 아이아코카 전 크라이슬러 회장이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일(현지시간) CNBC 등에 따르면 아이아코카는 파킨슨병으로 인한 합병증을 앓다 이날 오전 로스앤젤레스 벨에어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아이아코카는 1970년대 말 부도 직전의 크라이슬러를 기적적으로 회생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끌어들였다. 주요 자동차사에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 지원을 해준 건 크라이슬러가 처음이다.

파산을 피한 크라이슬러는 아이아코카의 긴축 경영 덕에 점점 성장했다. 아이아코카는 미국 유명 래퍼 스눕독과 함께 직접 크라이슬러 TV 광고에도 출연하며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그는 크라이슬러에서 미니밴 등 소형차 개발에 주력했고 이 차들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1987년 그는 지프, 아메리칸 모터 등을 인수하면서 회사를 성장시켰다.

아이아코카는 크라이슬러 입사 전 1946년 포드에 입사해 자동차 관련 업계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포드에서 일할 때부터 소형차 개발에 적극 나섰다. 포드의 대표작인 머스탱, 링컨 컨티넨털, 포드 에스코트 등을 개발해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1970년 12월에는 사장직에까지 올랐다. 그는 당시 불황에 빠진 미국에서 자동차 할부 구입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소형차 포드 핀토를 개발할 당시 비용 절감을 위해 연료 탱크 보호 장치를 빼 버리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해 평판을 흐리기도 했다. 1978년 혼다 소형차의 엔진을 들여와 소형차를 만들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결국 회사 후계자였던 헨리 포드 2세와 갈등을 빚었고, 포드를 나와 곧바로 부도 직전에 놓인 크라이슬러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아이아코카는 은퇴 후 봉사에 전념했다. 그는 자유의 여신상 복구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또 첫번째 부인인 메리가 당뇨병으로 사망하자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재단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자서전 등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192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자동차 대여업을 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가난은 나를 물질주의자로 만들었다. 나는 너무 가난해서 반드시 25살 때까지 연봉 1만달러를 벌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적었다. 그는 결국 미국 자동차 업계의 한 획을 그은 아이콘으로 자리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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