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까지 서울 대학로 근방 이화동 벽화마을을 즐겨 찾았다. 산 중턱 높은 고도에 위치해 발밑에 서울이 쫙 펼쳐보이고 바로 옆엔 낙산공원 성곽이 둘러져있는 데다가, 아름다운 벽화가 가득 그려져있어서다. 낮에 가면 따뜻해서, 밤에 가면 한적해서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감흥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 기사를 읽은 뒤 내 존재가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겐 방해물이 된다는 걸 알게돼서다. 기사는 이화마을 주민들이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이들이 내는 소음 등으로 고통받아 벽화를 지우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러고보니 혼자 앉아 주변을 구경할 때, 큰 소리로 떠드는 이들이나 남의 집 문 앞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이들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곳은 이화마을 뿐만 아니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 서촌 세종마을, 통영 동피랑마을, 부산 감천마을, 전주 한옥마을 등도 유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관광객들로 인해 거주민들의 생활이 파괴되는 걸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고 부른다.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도시를 점령하고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을 일컫는 '오버투어리즘'은 환경·생태계를 파괴하고 관광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 같은 현상은 관광객들의 목적지가 국립공원, 테마파크 등 전통적 위락시설에서 도심 및 지역사회로 확산되면서 나타났다. 과거의 관광형태가 관광지와 주거지가 분리되어 있었다면, 오늘날엔 관광을 위한 장소와 주거 목적의 장소가 혼재돼있기 때문이다.
주거지가 관광지로 개발되고 관광객이 주거지를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관광객과 지역주민 간의 갈등은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관광지화'를 의미하는 touristify와 지역의 상업화로 인하여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을 의미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합성어. 일반 주거지역이 관광지화됨에 따라 실생활에 불편을 겪는 주민이 이주에까지 이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관광객이 남기고 떠난 쓰레기로 가득찼다.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점 대신 관광객 상대의 기념품숍이 들어섰다. 현지인들이 드나들던 식당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사라졌고, 대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값이 비싼 식당만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베네치아에선 2010년대 초반부터 대형 크루즈의 정박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관광객을 상대로한 폭력사건까지 벌어졌다.
1955년 17만5000여명이었던 인구는 날이 갈수록 감소했다. 인구가 5만명을 찍으며 도시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베네치아 당국은 관광세 등 세금을 도입해 비용 부담을 높이는 방식으로 관광 수요를 억제했고, 주거지역으로 들어오는 지점 두 곳에 회전문으로 된 검문소를 설치했다. 성수기엔 현지 주민만 통과시키려 한 조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마요르카, 포르투갈 포르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그리스 산토리니,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히말라야 부탄, 일본 교토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힙스터는 '꾸며진 것' '작위적인 것'을 싫어한다. 자연스럽게 누더기가 된 옷을 사랑하고, 주름진 얼굴을 굳이 화장으로 가리지 않으며, 허름한 건물을 부시지 않고 다시 정비해 새롭게 사용한다. 이런 힙스터들은 여행을 가더라도 관광객 스타일로 하길 원치 않는다. 각종 '타워'나 '동상' 등 관광 명소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등의 관광 말이다. 대신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타인'의 눈에서 도시를 바라보지 않고 완전히 도시에 동화돼 '현지인'의 눈에서 바라보길 원한다.
이 같은 힙스터 트렌드가 전세계적 흐름과 맞물릴 때 등장한 에어비앤비는 '동네 놀이'를 가능케하면서 힙스터들의 구미를 완벽히 잡아냈다. 호텔과 비슷한 값에 현지인이 가는 마트를 가서 식재료를 사고, 현지인처럼 요리해서 밥을 먹고, 현지인처럼 한적한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게 해 '현지인 로망'을 충족시켜주면서 말이다.
문제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진짜 현지인'이 입게 됐다는 것이다. 베를린의 집값은 유럽에서 비싼 편이 아니었지만,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2년 동안 115%나 뛰어올랐다. 결국 베를린은 2016년 법으로 에어비앤비 규제를 강화했다. 베를린 당국은 단기 체류자를 위해 불법적으로 집을 임대하는 경우 10만 유로(1억3천만원)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이처럼 규제가 심해진 후 아파트 8000채가 일반 임대 아파트로 전환됐다.
또 베를린 곳곳 일명 '핫한' 지역에선 독어가 아니라 영어만 쓰는 카페가 늘어갔다. 2017년 당시 기민당 소속의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은 "요즘 베를린 식당들은 오직 영어만 사용한다"면서 독일이 점차 이민, 관광객 위주로 변화하고 있음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독일 언론은 장관의 발언에 더해 프렌츠라우어베르크, 미테 등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독일에서도 "관광객이 싫다"거나 "독일은 산업 구조가 탄탄해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적은데 왜 관광산업을 키워야하냐"는 등 반감 여론이 생겨났다.
2030년 세계 관광객 수는 18억명일 것으로 예상된다. 즉, 앞으로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나날이 더해가면 더해갔지 잦아들진 않을 것이란 소리다. 어쩌면 이제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국제적이고 전지구적인 문제가 된 것 같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고, 온실 가스 발생을 줄이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 오버투어리즘 문제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하는 시점이 온 게 아닐까.
참고문헌
관광지화된 주거지역 주민의 혼잡지각과 정주성 관계분석, 한양대, 남윤영
독일 세계를 읽다, 가지, 리처드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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