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타지마할·마추픽추… 상징물 없이 관광대국 된 나라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2.18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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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독일 그리고 관광객 ①] 독일, 스페인·프랑스 이어 세계 3대 관광 대국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독일 베를린 시내 전경 /사진=위키커먼스독일 베를린 시내 전경 /사진=위키커먼스


에펠탑·타지마할·마추픽추… 상징물 없이 관광대국 된 나라
여러 나라 친구들이 함께 있을 때, 먼저 말을 걸고 싶은 친구들은 언제나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 출신 친구들이었다. 막연히 에펠탑과 파리의 나라 프랑스와 '로마의 휴일'의 나라 이탈리아에 끌려서다. 자연히 독일인 친구들에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다행히 나만 이런 것 같진 않았다. 독일에 관광을 갈 계획인 이들에게 "왜 독일에 가냐"고 물으면 답은 언제나 같았다. "몰라요, 그냥… 뭐 딱히 어떤 걸 기대한다기보다…"라는 답 말이다. 독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이는 딱히 없어보였다.



독일엔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 또는 타워브릿지처럼 '명물'도 없다. 그래서인지 독일이 '관광 대국'이라는 데 대해 깜짝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놀랍게도 독일은 세계경제포럼(WEF)이 2017년 발표한 국가별 관광경쟁력 순위에서 스페인, 프랑스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국가다. 명실상부 '관광 대국'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매력이 독일로 관광객을 끌어모았을까. 당연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다들 알고 있듯 독일은 경제 강국으로 선진국이다. 우리에게 삼성, 현대, LG 등이 있다면 독일엔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포르쉐, 지멘스, 보쉬, 티센크루프, 지멘스 등이 있다. 독일에 도착해 시내를 둘러보면, 모든 택시가 벤츠임에 깜짝 놀란다. 독일이 선진국이라는 점은 매력적인 부분일 테다.



또 과거 분단국으로서 독일이 어떻게 분단 문제를 극복했는지, 또 통일한 뒤 이전의 흔적들은 어떻게 독일의 강점이 됐는지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독일은 통일됐지만 베를린엔 분단의 상징물 '베를린 장벽'이나 '체크포인트 찰리' 등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사람들은 이런 학술적 이유로 독일을 방문했을까. 물론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독일이 '세계 3대 관광 강대국'으로까지 거듭난 데는 독일 관광청의 노력이 주효했다고 본다.

슬로시티 인증 마크. /사진=위키커먼스슬로시티 인증 마크. /사진=위키커먼스
먼저 독일의 '슬로시티' 육성이다. 슬로시티(Slow city)란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느리게 사는 마을을 가리킨다. 슬로시티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인구가 5만명 이하고 도시와 주변 환경을 고려한 환경정책 실시, 유기농 식품의 생산과 소비, 전통 음식과 문화 보존 등의 조건을 충족해 방문객들로 하여금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할 때 가입할 수 있다.


지정된 대부분 도시들은 인지도가 높아져 관광객이 큰 폭으로 증가했고, 소득이 향상됐고 고용도 높아졌다. 지역 전통·고유문화를 유지·발전시켜 지역의 소속감·정체성·자부심 등이 높아져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켰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의 신안군 증도면, 완도군 청산면, 장흥군 유치면, 담양군 창평면, 하동군 악양, 예산군 대흥면 등도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이탈리아 남부의 아주 작은 도시 포지타노가 슬로시티를 선언한 뒤 독특한 매력을 가진 인기 관광지가 된 건 대표적 성공 사례다.
독일 헤스부르크 전경 /사진=위키커먼스독일 헤스부르크 전경 /사진=위키커먼스
독일도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독일은 헤스부르크(Hersbruck)를 시작으로 발트키르히(Waldkirch), 다이데스하임(Deidesheim), 헤르스부르크(Hersbruck) 등이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주민 1만2500명에 불과한 헤스부르크는 매해 독일 관광객 2만5000명과 외국 관광객 10만명 이상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중 2000명 넘는 외국인들은 1박 이상을 헤스부르크에서 머문다. 한국에도 수많은 슬로시티가 있지만, 이처럼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독일이 기울인 노력에 관심이 간다.

헤스부르크는 독일이 독일다운 노력을 기울여 탄생한 관광마을이다. 헤스부르크 주민들은 마을 곳곳에 18개의 조각작품을 설치해 마을에 독특한 매력을 불어넣었다. 헤스부르크는 다수의 축제도 기획했다. 매년 1월엔 '독일목동박물관' 축제, 7월말~8월초에는 '알트슈타트페스트', '사과의 날' 축제 등이 열린다. 2004년부터 헤스부르크가 개최한 '꽃장식 대회'도 도시를 더 아름답게 거듭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다. 헤스부르크 주민들은 마을 9~11세 어린이들에겐 어릴 때부터 요리를 가르치며 고향을 사랑하도록 가르친다. 2000년 초반부터 진행된 이 같은 '미니쿡 프로젝트'는 이들이 성인이 돼 헤스부르크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하는 자양분이 됐다.

독일은 과거의 아픈 기억, 즉 나치와 유대인에 관련된 기억들도 가감없이 공개했다. 처절하게 반성하기 위해 과거의 과오를 공개했는데 이것들은 결국 독일의 관광상품이 됐다. 잔혹한 참상이 벌어진 역사적 현장이나 자연재해 장소를 방문해 의미를 되새기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다크투어)이 최신 여행 트렌드가 됐기 때문이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슈톨퍼스타인 /사진=위키커먼스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슈톨퍼스타인 /사진=위키커먼스
독일이 과거의 과오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는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이다. 슈톨퍼스타인은 '걸림돌'이라는 뜻으로, 독일어로 걸려 넘어지다(stolpern)와 돌(stein)의 합성어다. 콘크리트 블록 사이에 가로, 세로, 높이 10㎝의 돌을 심고, 그 위에 황동 판을 붙여놓은 것으로, 독일 베를린 시내 거리 곳곳에서 슈톨퍼슈타인을 발견할 수 있는다. 1993년 처음 심기 시작한 이 걸림돌은 현재 7만개 가까이 설치됐다. 동판에는 한 사람의 이름과 출생년도, 체포일시 및 피살 정황과 함께 "그가 여기 살았다"고 적혀 있다.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는 의미다.

같은 맥락에서 독일인들이 베를린 한복판에 만든 유대인 학살추모공원이나 유대인 박물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등도 마찬가지다. 과오가 아니더라도 '분단'이라는 과거의 아픈 기억 역시 다크투어의 일환이 됐다. 베를린 장벽은 이제 인기 관광지가 됐고, 베를린 장벽 조각 역시 관광 기념품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다른 그 무엇보다 독일, 그중에서도 베를린이 요즘 가장 핫한 관광지로 뜬 건 2015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분 '힙스터' 열풍 때문이다. 힙스터란 보통 주류 문화에서 조금 벗어나 인디음악이나 독립영화 등 하위 문화를 소비하고, 힙스터의 필수품 '커피'와 '맥주'를 생활화해 마시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주로 공정무역이나 채식 등 사회 운동에도 적극적이다. 통일을 이끌어낸 베를린 청년들은 힙스터들에게 가장 구미가 당기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베를린 브랑겔거리(Wrangelstraße)/사진=위키커먼스베를린 브랑겔거리(Wrangelstraße)/사진=위키커먼스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와 노이쾰른 등은 수많은 그래피티와 떠뜰썩한 밤문화, 마이크로 농업, 멋진 카페들이 자리하며 힙스터의 성지가 됐다. 최근 인터넷에서 인기인 '힙스터 테스트'(스스로 힙스터인지를 체크해보는 테스트로 '서울시 마포구에 산다' '맥주는 수입 맥주만 마신다' 등이 선지다.) 36번 문항에 '최근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독일 베를린이다'란 게 있을 정도다.

자, 이처럼 독일은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가 됐다. 이제 누구나 독일(특히 베를린)을 가고 싶어하고, 독일의 다양한 모습을 즐기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렇게 독일 관광청의 노력이 들어맞아 성공한 순간, 독일에서는 환희가 아니라 분노가 들끓었다. 대체 독일에선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다음 편에서는 '성공한 관광지' 독일의 반응과, 현대 관광이 지닌 문제들을 짚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독일 그리고 관광객 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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