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화백(67)의 만화 '식객' 2권(진수성찬을 차려라)에 나오는 말이다. 기억은 잊어도 맛은 잊지 못한다는데, 마음이 헛헛할 때 고향음식을 찾는 것도 맛으로 그리움을 달래고자 함이다. 서울 종로구 조선시대 서민들의 애한이 서린 골목길, 맛집 골목으로 더 친숙했으나 청진동 개발로 사라진 '피맛골'에 대한 추억을 음미할 방도가 생겼다. 바로 '식객촌'을 통해서다.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하는 심정이에요. 대체 어떤 옷을 입고 나타날까, 무슨 색 치마저고리를 입었을까 얼마나 궁금한지 몰라요."
서울 종로구 종각역에 새롭게 들어선 'GS그랑서울' 지하 1층과 지상 1~2층에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 소개된 식당 중 10개 식당이 모여 '식객촌'을 형성, 오는 27일 오픈(그랜드오픈 행사 2월 13일)을 앞두고 있다.
허 화백은 "2000년부터 전국 8도를 돌아다니며 취재를 시작해 2002년 신문사에 연재를 내놓았는데 처음 2개월은 반응이 없어서 마음 졸였던 생각이 다시 난다"며 "이번 '식객촌'도 식객을 바탕으로 했지만 또 다른 새로운 작품이라 생각하니 기대되고 떨린다"고 말했다.
2002년 9월 2일 일간지 일일 연재만화로 시작한 허영만의 '식객'은 이후 27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됐고, 동명 드라마와 영화로도 나왔다. 이제 실제로 그 음식점들이 한데 모여 식객촌을 이루게 됐다. 14년 전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식객'이 발전을 거듭해 '장인의 맛'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으니 허 화백의 감회도 남다를 만하다. 마무리 중인 공사현장을 돌아보는 그의 눈빛이 살뜰하고 정성스럽다.
10개 업체가 한 곳에 모이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식객촌의 기획·총괄을 맡은 ㈜플렉스플레이코리아 서대경 대표가 나서 업체별로 열 번도 넘게 만나면서 설득하고 구상했다. 식당 업주들은 허영만 화백이 실제로 관여된 것인지 의심도 했다. 당연하다.
"수하동 영감이 그러더라고. '허 선생 정말 관여하는 거요?' 여기 모인 사람들 전부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장인이라고요. 음식에 대한 고집과 자부심이 대단하고, 각자 지켜온 자리가 있는 사람들인데 한 곳에 모인다는 건 도전이죠. 게다가 대한민국 심장인 종로에서 진검승부 하는 건데 다 잘돼야지."
만화에서 출발해 식당까지. 원천 콘텐츠가 좋으니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도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 '식객'이란 브랜드는 장인의 손맛에 허 화백의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더해져 세월을 거듭하며 더 견고해졌다. 이제 식객촌은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세계인들에게 한식을 알리는데도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다. 각 식당의 음식 이야기를 식객 만화에서 발췌해 새로 편집하고 한·중·일·영어 4개 언어로 책도 내고 모바일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허 화백은 "명동과 인사동, 광화문 등 종로 일대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가잖아요. 여기 와서 음식을 먹으면서 맛에 얽힌 이야기도 검색해 보면 재밌지 않겠어요?"라며 설레는 마음을 한껏 드러냈다.
'맛'과 '음식'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허 화백은 한마디로 '기대감'이라고 말했다. "음식이란 '숟가락 들고 먹기 전까지 어떤 맛일까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백반'이에요.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백반은 매일 바뀌잖아요. 백반집에 갈 때도 오늘은 무슨 반찬이 나올까 기대하는 것,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궁금하고 기대 되냐고요. 앞으로 '식객촌'도 어떻게 피맛골의 추억을 되살리면서 장인의 맛을 전할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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