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고목과 행인', 1960년대, 캔버스에 유채, 53x40.5cm /사진제공=가나아트
박수근 화백이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말이란다. 그의 장남 박성남씨(67·서양화가)는 아버지를 회상하며 "'괜찮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트레이드마크였다"고 했다.
1950년대 고단한 시대를 살았던 화가는 서민들의 정서를 그렇게 보듬었고,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도 몸 녹일 따뜻한 아랫목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고 화우들과 낱개 물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대다수의 동네사람들이 인정하듯 '무능력한 성남이 아버지'라 불려도 괜찮았다. 당시 누가 그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겠나.
박수근 '빨래터', 1959, 캔버스에 유채, 50.5x111.5cm /사진제공=가나아트
그는 남자보다는 여인과 소녀들을 주로 그렸다. 당시 억척스러움으로 시대를 버텨내야 했던 것은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연약하지만 지혜롭고 어진 마음으로 가정을 돌보며 이웃 간에 정을 나누는 주체인 아낙들의 모습에서 민족의 희망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희망을 화려한 색감이나 화사한 꽃, 인물들의 밝은 표정으로 담아내진 않았다.
대표작 '빨래터'(1960년대 초)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덤덤할 수가 없다. 바위 질감의 재료가 주는 무게감도 있지만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결코 화기애애하거나 수다스럽지 않다. 심지어 물소리도 멈춘 듯하다. 하지만 묵묵히 빨래하는 모습에서 얼룩지고 때 묻은 시대의 고난을 깨끗이 지우고픈 서민들의 애환과 희망은 더 뜨겁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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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그림에 나오는 벌거벗은 나무의 의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잎새 표현에도 인색했고 꽃은 거의 그리지 않았다. '모란꽃'과 '목련'을 남겼지만 두 작품 모두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애잔한 흰 꽃들이다. 가진 것 없이 외롭고 고단한 삶을 받아들인 채 조용히 새 봄을 기다리는 서민들의 간절한 희망을 그는 그리고 또 그렸다.
박수근 '책가방', 수채화, 25x31cm /사진제공=가나아트
인간정신의 고귀함을 사상이나 논리가 아닌 평범한 인물과 사물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표현했기에 '서민화가'이지만 그림 값은 가장 비싼 화가로 남게 된 것이 아닐까. 소박하고 남루했던 그의 삶, 그리고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들여다보게 할 박수근 화백의 작품들은 일상에 쫓겨 각박해진 우리네 마음도 다시 한 번 챙겨보게 한다.
전시는 오는 3월16일까지 59일간 휴관 없이 열리며, 매주 수요일은 저녁 9시까지 개관한다. 무료 특별강연도 열린다. △1월 19일 오후 2~4시 유홍준 △1월 24일 오후 2~4시 박성남 △2월 22일 오후 2~4시 윤범모 (사전신청 없이 현장에서 선착순 50명). 티켓은 일반 1만원, 초등학생 6000원. 문의 (02)736-1020.
박수근 '과일쟁반', 1962, 수채화, 25x31cm (왼쪽). '청색 고무신', 1962, 수채화, 20.5x30.5cm /사진제공=가나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