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추신수가 2013 겨울 우리에게 준 ‘희망’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2013.12.29 10:05
↑추신수가 27일(현지시간)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레인저스 볼파크에서 텍사스와의 입단식을 가졌다/ 사진=MLB 홈페이지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게 된 추신수(31)에게 만약 올해의 한자어로 무엇을 뽑겠냐고 묻는다면 어떤 것을 선택할까. ‘고진감래(苦盡甘來)’가 될 것이 확실하다.

‘고생 끝에 낙이 찾아오다.’ ‘어렵고 힘든 일이 지나면 즐겁고 좋은 일이 오기 마련이다.’라는 뜻이다.

추신수의 계약 소식은 우리 시간으로 일요일이었던 22일 오전 CBS 스포츠와 MLB 인사이더 기자인 존 헤이먼(Jon Heyman)의 특종 보도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경찰이 파업 중인 전국철도노동조합 지도부 체포를 위해 민주 노총 사무실에 진입을 시도했고 보도 전문 채널을 통해 그 과정이 하루 종일 실황중계 되다시피 했다.

올시즌 유난히 몸에 맞는, 힛 바이 피치드 볼이 많아 온 몸에 든 멍으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추신수가 마침내 자유계약선수(FA)가 돼 7년간 총액 1억3000만 달러(이하 1달러 1060원 환산, 약 1380억원)에 텍사스와 계약했다는 기쁜 소식이 태평양을 날아왔는데 같은 날 서울에서는 공권력과 노조가 정면 충돌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비록 철도 노조 파업 사태로 계약 소식이 전해 진 날에는 그 가치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느낌이 있지만 추신수의 7년간 1억3000만 달러 계약은 야구는 물론 한국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대 기록이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40)가 2001시즌을 마치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총액 6500만달러(약 690억원)에 계약했을 때만 해도 그를 능가하는 한국인 프로 스포츠 선수가 더 이상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연고지 1차 지명구단 롯데와의 계약을 포기하며 태평양을 건넌 2001시즌에 추신수는 겨우 19세였다.

고교 시절 왼손 패스트볼 투수로 더 주목받았던 그는 타자로 전향해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 선수로 메이저리그 도전의 첫 발을 내디뎠는데 마이너리그의 현실은 예상보다 열악하고 냉혹했다.

그 시절에 대한 추신수의 회고담을 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다. 더욱이 투수가 아닌 타자로 메이저리그에 성공하는 것은 더 어렵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인 천재 타자 이치로가 2001시즌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데뷔해 자신에게 과연 기회가 올 것인가 조차 회의적이었다. 2001년 이치로가 아메리칸리그 MVP, 신인왕, 골드글러브를 석권했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4년이 넘는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마침내 2005년 4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였으나 대수비, 대주자로 나서거나 중견수 백업 요원으로 뛰었다.

결국 그는 시애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2006년 7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 됐다. 돌이켜보면 그 트레이드가 추신수의 메이저리그 인생을 바꿔놓았다.


메이저리그에서 ‘1억 달러’라는 몸값은 박찬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이다. 당시 국가대표로 태극 마크를 달고 있던 박찬호에게 오른손 우완 케빈 브라운이 자신의 소속팀인 LA 다저스와 7년간 1억500만 달러(약 1114억원, 평균 연봉 1500만달러)에 계약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흥미롭게도 당시 케빈 브라운의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였다. 박찬호는 스캇 보라스의 능력을 높이 사 1999시즌을 마치고 자신을 메이저리그에 진출 시킨 한국계 스티브 김을 떠나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추신수도 비슷하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 한국 국가대표로 참가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소속팀 클리블랜드에서도 중심 타선으로 활약한 그는 2010 시즌을 앞둔 2월 에이전트를 앨런 네로에서 스캇 보라스로 교체했다.

2010년 최고의 행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표로 선발돼 금메달을 따내면서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은 것이었다. 당시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메이저리그 시즌 후인 11월12일 개막한 것도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2001년 12월23일 텍사스 레인저스 홈 구장에서 입단식을 한 박찬호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톰 힉스 구단주, 존 하트 단장, 오른쪽이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이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매각돼 구단주와 단장은 모두 바뀌었는데 스캇 보라스는 건재하다.

스캇 보라스의 전략도 박찬호, 추신수 모두 같다. 소속팀이 자유계약선수(FA)가 되기 전 다년 계약을 요구했으나 한결같이 거절했다. FA 자격을 얻어 시장에 나가 가치를 평가 받는 길을 택했다.

그 영향으로 LA 다저스에 입단해 첫해 14승을 거둔 류현진과 메이저리그 진출을 추진 중인 윤석민의 에이전트도 스캇 보라스이다. 보라스는 한국야구로 돌아 온 김병현, 김선우의 에이전트를 맡기도 했는데 특별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그라운드에서 확실한 실력으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스캇 보라스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 메이저리그의 냉정한 현실이다.

추신수의 계약으로 새삼 고교 시절 동기생 라이벌이었던 이대호(경남고), 김태균(천안북일고)의 현재가 눈길을 끈다.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섰을 때 이대호는 롯데, 김태균은 한화와 계약하고 한국 프로야구에 데뷔했다.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이대호는 추신수가 계약한 다음 날 소프트뱅크 유니폼으로 갈아입었고 최대 3년 총액 19억엔(약 200억원)을 받게 됐다. 내년 연봉은 4억엔(약 41억원)이다. 추신수의 내년 연봉은 1400만달러(약 149억원)이고 김태균의 올해 연봉은 한국 최고인 15억원이었는데 내년 시즌은 미정이다.

2014 연봉 액수로 보면 추신수 149억원, 이대호 41억원, 김태균 15억원이고 그들은 각각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 한국프로야구에서 정상의 위치에 섰다.

추신수가 2013년 끝자락에 우리에게 주는 희망은 ‘꿈을 가지자’ 이다. 메이저리그의 관점에서는 야구의 변방인 아시아 출신으로 타자로 정상에 오르는 것은 더 어렵게 생각됐다.

특히 아시아 출신 사상 최초로 1억 달러 이상 몸값의 선수는 불가능으로 모두 느꼈는데 추신수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 도전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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