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상대는 애플 아닌 구글

머니투데이 샌프란시스코=유병률 특파원 | 2013.05.20 06:00

[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48> 구글 I/O 참관기 - 삼성을 생각하다

구글 CEO 래리 페이지가 15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I/O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구글제공

지난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I/O(개발자회의)에 참석해 구글 글래스를 써보면서 느낀 점은 나처럼 ‘길치’에다, 건망증 심하고, 타자속도 느리며, 늦둥이까지 둔 사람에겐 아주 유용하겠다는 것이다.

“오케이 글래스(Ok, Glass)”라고 말을 걸자, 오른쪽 눈 위쪽 앞으로 검색, 사진촬영, 길안내 등 작은 메뉴스크린이 떴다. 이어 “사진 찍어!(take a picture)” 한마디 하자, 기자가 보고 있는 그대로 안경이 찍어준다. 사진 찍느라 정작 늦둥이의 생생한 재롱을 못 보는 일은 없을 듯했다. 길 가다 헷갈리면 안경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헤맬 일도 없을 것이고, 장봐야 할 목록을 띄워놓고 장을 보면, 심부름 다녀온 뒤 구박받을 일도 없을 듯했다. 말하는 대로 트윗을 날리고, 포스팅할 수도 있다. 참으로 똑똑한 안경이었다.

똑똑해진 건 안경만이 아니다. 노트북PC 검색창 띄워놓고 “오케이 구글(Ok, Google)”이라고 말을 건 뒤, “여기서 00까지 얼마나 걸리니?”라고 물으면 ‘여기(here)’가 어디인지 알아듣고 대답한다. “비행기”라고 물으면 내 메일을 뒤져 비행스케줄 알려준다. 수백 장 사진 정리하느라 고생할 일도 없을 듯한데, 잘 나온 사진, 웃고 있는 사진, 친지들 사진 등을 인식해서 골라주고, 예쁘게 마사지까지 해준다. 낯선 도시를 방문해 구글 지도를 열면 내 취향까지 분석해 3D로 장소를 추천한다. 내 마음까지 읽어준다.

검색에서 출발한 구글은 더 나은 검색을 위해 축적한 소프트웨어 기반기술을 모든 서비스로 다 녹여내는 듯했다. 녹아들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데, 바로 우리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똑똑한 인공지능 컴퓨팅을 지향한다는 것. 앞으로 뭐든지 나올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구글의 이런 기술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름아닌 래리 페이지의 연설이었다. 목의 병 때문인지 거의 쉰 목소리였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는 새로 만든 소프트웨어보다 비전과 철학을 이야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많은 기업들이 협업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의 진보는 제로섬이 아니라는 것이다. 컴퓨터공학이 세계빈곤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 못할 이유가 없다. 기술은 인류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구글의 진짜 경쟁력은 소프트웨어 기술 그 이면에 있다. 구내식당의 풍성한 유기농 음식 그 이면에 있다. 상하좌우 가릴 것 없는 유연한 협업의 문화, 그리고 한국인들 이상으로 뼈 빠지게 일해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비전과 철학이 바로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상부상조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삼성은 애플보다 오히려 구글과 진검승부를 펼쳐야할지도 모른다. 구글은 이미 하드웨어 산업으로 뛰어들고 있다. 애플의 하드웨어 인력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이곳 실리콘밸리에서는 심심찮게 들린다. 삼성이 진짜 무서워해야 할 대상으로 치자면, 애플보다 오히려 구글쪽이다.

두 기업을 보면, 많은 부분에서 반대이다. 탄탄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지고 있는 구글은 이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추구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메모리, 센서 등 탄탄한 부품라인을 가지고 있다. 누가 무엇을 만들든 삼성은 더 다양하게, 더 저렴하게, 더 신속하게 하드웨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삼성은 자신의 하드웨어에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추구하고 있다. 거꾸로이다.

지난 3월 비즈니스위크가 삼성전자에 대한 분석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게재한 일러스트레이션. 삼성의 수많은 하드웨어들 한가운데 이건희 회장의 사진을 배치했다. /비즈니스위크

얼마 전, 비즈니스위크는 삼성이 스마트폰 1위가 된 비결을 서울 수원 용인 구미 등으로 출장까지 다녀와서 커버스토리로 게재한 적이 있다. '소니 대 삼성(Sony vs. Samsung)'의 저자 싱가포르 국립대 장세진 교수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그대로 인용했다. "삼성은 마치 군대조직 같다, 최고경영자(CEO)가 방향을 제시하면 일사분란하게 지시를 따른다…상시적인 위기가 강조된다."

하드웨어에서 출발한 회사의 문화는 소프트웨어에서 출발한 회사와는 많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사분란한 조직문화에, ‘위기의식’이 너무 강조되다 보면 혁신이 위축될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가 몇 해 전부터 자율 출근제 등 스마트워크를 적극 권장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를 추구하는 회사라면, 밤새 일해도 기분 좋게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는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간의 기분 좋은 협업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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