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스탠포드대 연구실에서 만난 황 교수는 “교육에서도, 학문에서도, 산업에서도 다양성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다”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로로 기회를 부여해야 인재를 키울 수 있고, 학문과 산업도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성이 있어야 발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4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전자산업에서 주목하고 있는 신소재인 복합산화물 박막 연구에서 미 물리학계의 대표적인 연구자로 주목 받고 있다. 반도체, 초전도체 등의 소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산화물의 박막을 원자 수준에서 인공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기술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네이처 등 세계적 학술지에 124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인용지수만 7600회에 달한다.
하지만, 그는 “SAT(미 대학수능) 점수나 학교 성적만 봤다면 MIT에 못 들어갔을 것”이라며 “던킨빌에서 이제껏 한번도 MIT에 진학한 학생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성적보다 여러 경험들이 감안된 덕분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 동네가 워낙 작은 촌이었기 때문에 본 것이 별로 없었다”면서 “다만 부모님이 좋은 차, 좋은 집에 돈 쓰기보다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더 넓은 세계를 생각하도록 한 것, 틀을 벗어나 독창적으로 생각하게 한 것(think out of the box)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은 단 하나의 숫자, 즉 점수만으로 평가하지만 미국은 출신지와 활동 등 수많은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한다”면서 “이렇게 뽑힌 다양한 재능의 학생들이 대학에서 서로 영향을 주면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스탠포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험점수가 좋은 학생들, 점수는 나쁜데 창의적인 학생들, 두 부류를 만나게 되는데, 이렇게 뒤섞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MIT에 와서 그는 처음부터 응용물리학을 전공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해볼까 하고 열심히 듣다가 생물학에도 관심이 갔고, 그러다 결국은 물리학과 전자공학 전공으로 졸업을 했죠. 진짜 공부는 박사학위 하면서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전공을 확정해야 하는 한국 학생들이 안타까운거죠.”
그는 지금은 미 물리학계 산화물 박막연구에서 독보적인 존재이지만, 연구과정에서 실수도 많았다고 했다. “박막 연구는 박사학위 받은 다음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는데, 그래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관점을 수용할 줄 알았다는 거에요. 똑 같은 경험과 공부를 해도 관점이 다를 수 있거든요. 여러 관점들을 받아들이고, 그런 관점들을 융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이 제 학문적 경험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초과학에 대한 ‘느긋한’ 투자를 당부했다. “한국은 늘 ‘빨리 빨리’를 강조합니다. 물론 이 덕분에 일본이 30년 걸려 만들었던 것을 5년여 만에 만들기도 했지만요. 하지만 기초과학은 좀 다릅니다. 투자금액의 문제, 연구인력 수준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과학커뮤니티를 형성하려면 기본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저 같은 과학자들에게 와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많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이런 상황을 즐기지요.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거거든요. 창조경제요? 몇 년,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병률기자 트위터계정 @bryu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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