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자가 "만원만 갚아라"해서 갚았더니···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12.09.15 10:27

[소셜디자이너열전]<9>제윤경 사회적기업 에듀머니 대표 겸 (사)희망살림 상임이사

편집자주 |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설계사들이 있다. 이들은 불평등·환경훼손·인권침해·동물학대 같은 사회 문제를 사회적기업·협동조합·비영리단체·기업의 사회적책임 같은 활동을 통해 해소하자고 나선다.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의 실행자,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들을 머니투데이가 소개한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이동훈 기자 photoguy@
“채권추심업체가 딱 만 원만 갚으라고 했다더군요. 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이자나 원금의 일부를 조금이라도 갚으면 채권 소멸시효가 살아나거든요. 법을 바꿔야 해요."

경제교육 사회적기업 에듀머니의 제윤경 대표(41)는 분노했다. 서울시 구청 공무원들의 불법추심 단속 경험을 들은 직후라 더욱 그런 듯했다. 그는 11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대부업체 단속 공무원 격려 오찬에 참석하고 바로 인터뷰 자리로 왔다고 했다.

◇부채 해방의 전도사가 된 재무설계사 = 제 대표는 "채무자들은 애초에 채권에도 소멸시효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고 말했다.

"추심업체가 '당신의 카드 채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만 해도 다중채무자들은 그게 무슨 채권인지도 모르는 채 과거에 겪었던 추심 공포를 느끼게 되어요. 결국 채무자의 공포심을 되살려 상환 의무가 사라진 빚을 갚게 만드는 거에요."

제 대표는 이런 행위를 '약탈적'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인 이헌욱 변호사와 함께 <약탈적 금융사회>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우리 사회 대다수를 빚의 노예로 전락시킨 ‘약탈적 금융’을 고발한다.

"은행은 채무자가 부채를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돈을 빌려 주었다. 금리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은행은 20~30년 동안 빌려 준 돈의 2배 이상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자 수입과 집 가운데 하나는 챙길 수 있는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채무자 서류를 조작해 신용 등급을 올리는 과잉 친절도 마다하지 않았다. 저소득층이 미래에 받을 노동의 대가까지 철저하게 약탈해 간 셈이다.(본문 중)"

제 대표는 13일 출범한 채무자 시민단체 '빚을 갚고 싶은 사람들'(빚갚사)의 결성을 추동한 추진위원이다. 지난 7월엔 채무자 지원을 목적으로 출범한 사단법인 희망살림의 상임이사를 맡았다.

그는 2007년 1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아버지의 가계부>의 작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재무설계 전문가로 기억한다. 어쩌다 그는 약탈적 금융과 싸우는 투사, 부채 해방의 전도사가 된 것일까.
↑지난 7월 27일 서울시 금융복지상담센터 상담사를 교육하고 있는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겸 희망살림 상임이사. ⓒ희망살림

◇"아버님, 빚도 땡 처리 돼요" = 우연이었다. 2006년 말부터 2007년까지 모 방송사의 '잘 살아보세'란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일이었다. 저소득가정을 방문해 상담하고 가족공동체가 회복할 길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중 제 대표는 방 1칸에 일곱 식구가 사는 집을 알게 됐다.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이 집 가장은 한때 잘 나가던 문구 도매상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사업이 망한 후 은행 등 채권자한테 시달리던 가장은 "월 90만 원 이상 벌면 소득추정이 들어와서 은행에 다 뺐긴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이직이 가능한데도 월 120만 원 벌 수 있는 일자리로 가지 않고 있었다.

"상담을 시작했는데 그 분이 죄진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땅바닥만 보고 있어요. 답답했어요. '아버님, 빚도 땡 처리 돼요' 했죠. 은행은 이미 채권을 부실처리 했을 거다, 이렇게 된 게 아버님 책임이 아니다, 여태껏 열심히 살았는데 그 정도 혜택을 받는 건 괜찮다고요. 그랬더니 그 분이 고개를 들어요. 눈을 맞추기 시작해요."

제 대표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더 많은 가난한 집 사연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들은 채권추심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어머니들은 울고 있었다. 그런 집 아이들을 심리상담하면 극단의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나오곤 했다.

"사람이 채무 독촉을 당하기 시작하면 바보가 되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가 오죠, 악인 취급하죠. 그런 일을 당하고 있자면 죽기 아니면 바보 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이 느껴져요. 그게 다중 채무자의 현실이에요."


제 대표는 그런 가정에 워크아웃, 파산 등 여러 회생책을 알려줬다. 빚을 다 갚지 않고 수입 수준만큼 갚을 수 있다는 사실도 전해줬다. 그런 얘기를 듣자 사람들이 달라졌다.

"다 큰 어른이 적금 타고 꺼이꺼이 우는 걸 보면서 사회적 기업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버지의 가계부> 판 돈 1500만 원으로 차렸던 에듀머니를 5000만 원으로 증자하고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죠. 서민중산층 가계, 이 사람들 편에 서서 정보를 주고 싶었어요."

◇돈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려면 = 제 대표의 꿈은 에듀머니가 가진 돈에 대한 철학이 더 많이 사회에 퍼지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의 구속과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에듀머니가 전파하고자 하는 돈에 대한 철학은 "적은 돈으로 적게 소비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이다.

"제가 남들이 쓰는 것 중 안 쓰는 영역이 있어요. 가전제품, 가구 같은 물품은 안사는 건 물론 줄이는 데에 주력하죠. 가전제품은 전기요금과 다 연결됩니다. 가계 빚 문제와도 연결되어요. 그 대신 술값은 써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니까. 비싼 것 안 먹을 뿐이죠. 하하."

그는 "이런 삶이 퍼지면 더 창의적인 사회적 기업이 나오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회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있어도 수입이 줄어들까봐 사회적 기업을 시도하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봤다는 것이다.

"에듀머니 임직원의 연 소득은 1800만~3000만 원 수준이에요. 대신 아침, 점심, 저녁 다 유기농 밥상을 차려줘요. 중요한 복지죠. 수입이 적어도 잘 살 수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 세상이 더 좋아질 거에요."


[팁]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가 말하는 '빚 땡처리 노하우'
△전화 피하지 말고 받아라. 단, 녹음해라. 공정채권추심법이 있어서 하루 1번 이상 전화 걸면 불법이다.
△협박을 두려워 말라. 가령 제3자한테 말하는 것은 불법이다.
△채무를 조정하자고 협상하라. 채무는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
△채무상담을 받아라. 신용회복위원회 사이버지부(https://cyber.ccrs.or.kr/),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등 다양한 상담처가 있다.
△뭉쳐라. 다음 희망살림 카페(http://cafe.daum.net/edufp) 등 채무자 시민단체를 통해 함께 채무자의 권리를 주장하라.



화차보다 더 무섭다! ‘약탈적 금융사회’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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