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닥터 지바고'‥조승우만의 힘?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 2012.03.09 10:27

[이언주 기자의 공연 박스오피스]뮤지컬 '닥터지바고' 3번 본 이유

↑ 뮤지컬 '닥터지바고'에서 주인공 유리지바고 역을 맡은 조승우(왼쪽)와 홍광호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닥터지바고'를 모두 세 번 봤다. 개막 닷새째 되던 날 홍광호 주연의 공연을 처음 봤고, 얼마 전 조승우의 지바고를 봤다. 혹평에 시달리며 가슴앓이를 하던 닥터지바고는 어디가고 조승우 합류 이후 거짓말처럼 힘을 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닥터 지바고=조승우'라며 '조바고'를 극찬할 만 했다.

조승우의 연기, 노래, 작품에 대한 몰입과 분석력은 탁월했다. 막이 오른 지 10분도 안 돼 그가 등장했지만 조승우가 무대에 나오기 전과 후 극장의 공기가 다르다고 느낄 정도였다. 전달력이 뛰어난 대사, 조승우의 목소리기에 충분한 노래, 섬세한 눈빛과 몸짓으로 철저하게 '지바고'를 그려내는 순간순간 객석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문제는 조승우를 빼고 생각해도 같은 작품, 같은 배우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명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작 뮤지컬이 불과 보름 만에 배우 한명에 이토록 좌지우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다시 홍광호의 지바고를 한 번 더 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닥터지바고. 깊은 중저음으로 압도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홍광호의 노래솜씨는 여전했고, 다만 연기를 펼치는 감정선은 개막 직후보다 확실히 섬세하고 명쾌해졌다. 하지만 이 정도는 수차례 공연을 펼치는 동안 나아질 수 있고 컨디션에 따라 일시적으로 달리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 유리지바고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라라 역의 김지우 ⓒ오디뮤지컬컴퍼니
크게 달라진 건 지바고 역이 아니었다. 순수한 이상주의자에서 무자비한 혁명론자로 변한 파샤 역을 맡은 강필석의 연기가 공연 초기와는 달리 놀라울 정도로 빛을 발했고, 지바고의 아내로 묵묵하게 가정을 지키는 토냐 역의 최현주는 강하지 않으면서도 전체를 살리는 탄탄한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극의 버팀목이 됐다.

김지우는 당차고 열정적인 라라의 모습을 매끈하게 소화해 이야기의 흐름에 활기를 더했고, 코마로브스키를 맡은 서영주의 중후한 목소리는 매력적인 감초 역할을 했다. 앙상블(조연)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도 더 또렷해져 촉이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밀도를 한껏 끌어올리면서 작품 전반에 자신감이 실렸다.


'영화는 개봉 첫날 보고, 공연은 마지막 날 보라'는 말이 있다. 닥터지바고를 보면 이 말이 왜 나오게 됐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만큼 공연은 숙성기간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닥터지바고는 작품 자체의 일부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의 에너지가 발산되고 있다. 하지만 뮤지컬은 모노드라마(배우 한명이 모든 배역을 맡아 하는 연극)가 아니다. 단 한사람의 노련함이나 특출한 하나의 요소가 전체를 이끌 수는 없다. 배우들 간의 호흡, 극을 끌고 가는 음악의 힘이 중요한 만큼 이 요소들이 탄탄하게 받쳐줄 때 주연 배우들의 기량도 극대화되는 것이다.

축구대표팀 내에 박지성이 뛰고 있으면 함께 뛰는 다른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진다고 한다. 똑같은 대표팀을 다르게 만드는 박지성의 힘이 닥터지바고에는 조승우에게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개막 전부터 모든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작품의 초석을 다진 홍광호의 리더십을 과연 누가 폄하할 수 있을까.

조승우가 분위기 전환을 확실히 하면서 배우, 음악, 무대 전반에 힘이 실리니 홍광호의 지바고도 새롭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탄력이 붙은 지금, '조바고'와 '홍바고'가 계속해서 제 몫을 톡톡히 해줘야 할 때다. 아직도 3개월이나 여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뮤지컬 '닥터지바고'에서 파샤와 라라의 결혼식 피로연 장면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닥터지바고'=6월3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7만~13만원. 2시간40분(인터미션 포함). 158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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