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바고 의사선생, 우린 언제 감동할까요?"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2.02.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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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기자의 공연 박스오피스]닥터지바고 '조승우' 구원투수 되나...

↑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동명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러시아 혁명시기, 전쟁 속 세 남녀의 사랑과 열정을 다룬 서사극이다.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동명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러시아 혁명시기, 전쟁 속 세 남녀의 사랑과 열정을 다룬 서사극이다.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지루하다.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때문만은 아니다. 강약 조절과 밀고 당기는 맛이 없는 밋밋한 서사구조는 대체 어느 부분에서 감동받을 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1900년대 초반 러시아 혁명시기를 배경으로 세 남녀의 사랑과 열정을 담은 로맨스 서사극 '닥터지바고'는 원작소설과 영화가 워낙 유명한데다 국내 초연으로 미리부터 공연계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작년 2월 호주에서 89.7%의 유료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호주 공연 역사상 이렇게 위대한 순간은 없었다'는 등 언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개막 일주일째 접어든 '닥터지바고'는 낯설었다. 공연 시작 얼마 후 펼쳐진 결혼식 피로연 장면에서 배우들이 흥에 겨워 한참을 춤추고 노래했지만 그 흥분이 객석에 전달되지 못했다. 총에 맞아 심각하게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며 "꽉 잡아요, 굉장히 아플거에요, (몸 속 파편을 꺼내자)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이건 기적이에요!"라고 순식간에 대사를 치자 객석 곳곳에서 '풋'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심각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았고 애틋해야할 부분도 간절함이 부족했다. 혹시 '전쟁'이라는 소재 자체가 요즘 관객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일까. 최근 개봉했던 영화 '마이웨이'도 스펙터클한 전쟁장면이 사실적이고 볼만했지만 늘어지는 듯 했고 드라마가 약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 개봉 당시만큼 영화관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걸 보면 대중은 이제 다른 걸 원하는지 모른다.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 몇몇 관객들에게 공연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한 젊은 여자 관객은 "지킬앤하이드에서 홍광호가 노래를 너무 잘 불렀다고 해서 왔는데 역시 잘한다"고 말했고, 중년의 여성도 "배우들이 춤도 잘 추고 어쩜 그렇게 노래를 잘 하냐"며 칭찬했다. 그러나 한 뮤지컬 마니아는 "작품이 좋으면 여러 번 보기도 하는데 이 공연은 지루해서 두 번 보긴 힘들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 지바고 역을 맡은 홍광호의 가창력은 단연 돋보였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지바고 역을 맡은 홍광호의 가창력은 단연 돋보였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작품을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한 요소는 분명 있었다. 4.4도 경사진 무대의 표면은 오래된 러시아 빌딩에서 착안한 기하학적 무늬와 패턴으로 꾸몄고, 인위적인 원근법을 사용해 무대가 더 크고 깊게 보이게 했다. 극 중 자연스럽게 녹아든 흑백사진 영상은 시대적 배경을 세련되게 설명하는 데 일조했으며, 무대를 오묘한 느낌으로 휘감은 조명의 힘은 인상적이었다.

안정적인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로맨틱한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선율, 모던한 느낌을 살린 무대 세트. 하지만 해외 성공작이 반드시 우리의 감성에도 꼭 맞는 건 아니다. '낯설게 하기'에는 반드시 '공감'이 따라야 한다. 낯선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 비로소 신선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작사 오디뮤지컬컴퍼니는 "국내 초연작인데다 이제 막 개막했기 때문에 다듬어가는 과정"이라며 "영화의 감동이 이어져선지 젊은 관객층 보다는 40~50대 중년 관객들의 반응이 확실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국·미국·호주가 합작했기 때문에 작품 수정이 쉽지 않겠지만 일부 장면의 압축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매서운 칼바람과 눈 속에서 혁명의 시기를 겪고 있는 러시아대륙의 이야기는 따뜻한 서울의 6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조만간 지바고 역에 투입될 조승우가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냉혹한 추위를 견디고 봄날엔 어떤 모습으로 감동을 줄지 궁금하다. 6월3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7만~13만원. 1588-5212.

△출연: 홍광호 조승우 김지우 전미도 최현주 강필석 서영주 김봉환 임선애 김기순 강상범 김태문 서정수 김유정 이승한 정수훈 정동효 박유덕 황호정 윤나리 이용규 방글아 이지은 안소연 조수나 정재은 이재균 이상호 배준성 염혜정 강민욱 류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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