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김승유-김정태-윤용로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 2012.02.06 06:17
"거장과 이류의 차이는 무엇일까. 거장은 크든 작든 모든 일에서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완벽한 확신을 갖고 안다. 이에 비해 이류들은 마지막이 다가오면 조바심을 낸다. 이류는 거장과 달리 절제된 평정심을 갖고 바다로 뛰어들지 못한다."

금융위원회로부터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 받던 날 퇴진을 공식 밝힌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철학자 니체의 기준으로 봐도 거장이다. 김 회장은 "최고의 순간에 물러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고 했다.

1971년 한국투자금융에서 출발해 충청 보람 서울은행을 인수하고 마침내 외환은행까지 품에 안으면서 자산 기준 2대 금융지주로 등극한 하나금융은 김승유 회장을 빼곤 설명이 안된다.

김회장의 퇴진 선언은 그래서 하나금융엔 충격적이다. 더욱이 외환은행 노조와 야당 등으로부터 받게 될 정치적 공세와 여러 난제들을 감안하면 김승유 회장의 역할은 앞으로 더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승유 회장은 떠나야 한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참모이자 책사로 인정받는 장량(장자방)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웠지만 한나라가 건국되자 장가계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큰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장량의 처신은 자리에 집착함으로써 나중에 토사구팽의 신세가 된 한신과 대비된다.

김승유 회장은 일부로부터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두터운 친분 때문에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총선과 대선을 통해 정치권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김승유 회장의 퇴진이 하나금융 임직원들의 우려와 달리 외환은행과의 성공적 통합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 물러나지 않고 있다가 1년 뒤 정치 지형도가 크게 바뀐다면 하나금융은 예상치도 못한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김승유 회장은 이런 경우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 회장이 물러나면 누굴 후계로 정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신한금융과 함께 한국의 민간 금융사를 대표하는 하나금융이 외부에서 후임 회장을 찾는다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히 금융사를 경영해 본 적이 없는 교수나 관료출신이 그렇다.

인사는 상식대로 하면 되고, 내부 임직원들의 여론이 반영되면 더 좋다. 그런 점에서 김정태 행장이 후임으로 부상하는 건 자연스럽다.

김정태 행장은 하나은행의 창립멤버이고 친화력이 있고, 신망도 두텁다. 게다가 정치적 색채가 전혀 없어 앞으로 정국 변화와 관계없이 하나금융을 끌어갈 수 있다. 김승유 회장에 비해서는 카리스마와 무게감이 많이 떨어지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김 회장 말대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윤용로 부회장은 글로벌 마인드와 오랜 금융관료 경력, 기업은행장직의 성공적 수행에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넓은 네트워크 등 강점이 많아 하나금융을 끌어가는 데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닌 듯싶다. 윤 부회장 본인도 상처받은 외환은행 직원들을 위로하고, 외환은행의 정상화를 위해 뛰겠다는 각오다. 이런 윤 부회장과 하나금융의 진정성을 외환은행 직원들도 참고할 필요는 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라는 대업을 이루었지만 이로 인해 김승유 회장과 김종렬 사장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과 손실을 입게 됐다. 그렇지만 1번과 2번이 떠남으로써 외환은행과의 진정한 통합에 한발 더 가까이 가게 되는 현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게 세상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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