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세계화는 음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부터 출발

머니투데이 이정훈 월간 외식경영 | 2011.11.15 21:33

<키친 i> 강진명 대표

동네주방을 자임하고 친환경?건강 콘셉트의 식당혁명을 조용히 일으키고 있는 홈메이드 콘셉트의 샐러드 카페 레스토랑, <키친·i>의 강진명 대표를 만나보았다.

강 대표는 ‘건강식’을 평생 화두로 삼고 균형 잡힌 식단과 올바른 조리법을 연구해왔다.

‘SAE(식안애, 食安愛)‘라는 요리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 개발과 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고 축적한 성과는 자신이 운영하는 <키친·i>와 부산의 한우 고깃집 <담>의 메뉴에 반영해오고 있다.

강 대표는 건강 음식을 연구 개발 조리할 때 음식과 그 음식이 놓이는 자리의 사회 경제적 예술적 요소까지 기획의 범위 안에 넣는다. 단지 음식을 개발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푸드 플래너(Food Planner)’로서 인간의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문화생활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최근 성공리에 개점한 <키친·i>의 콘셉트 마무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강 대표를 만나 한식세계화를 위한 선결과제와 그녀의 음식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비슷한 것은 가짜, 사이비가 정통의 자리 차지해선 안 돼
강 대표는 2006년 11월 한우생고기전문점이자 한식당인 <담>을 부산에 열기 몇 년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고깃집이긴 하지만 간단한 식사류, 찬류, 장류, 찌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모친에게 배운 바를 바탕으로 하나씩 준비했다. 개점하기 3~4년 전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류부터 준비했다. 강 대표는 한식이 근본적으로 슬로푸드인 점을 감안하면 그것도 짧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식당운영 경험이 없어서 나름대로 오래 전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하고 마련해 어렵게 <담>을 개점하였다. 그런데 몇 년을 걸려 준비해서 개점하고 보니 주변 식당들은 아주 쉽게 식당을 차리는 것이 강 대표 눈에 들어왔다.

“식당에서 음식을 쉽게 빨리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김치도 발효시켜 제 맛을 내지 않고 식초와 설탕으로 맛을 낸 것들이 많습니다. 무늬만 비슷한 엉터리 음식은 손님을 기만하는 거지요. 차라리 못 하겠으면 품질이 좋은 음식을 사서 쓰고, 잘 만들 수 있는 음식에만 전념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손님의 입맛을 속이는 엉터리 음식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어떤 죄의식이나 심각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지요. 우리 외식업자들의 자성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 한식세계화는 기본부터 충실해야, 소금 하나라도 개선 노력 필요
강 대표는 기본이 안 된 음식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거국적으로 추진 중인 한식세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음식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금의 안전성과 식용 적합도 기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은 신중하게 가려서 써야 합니다. 음식에는 천일염을 쓰는 것이 좋지요. 그런데 천일염이 식용으로 허가가 난 것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전에는 불순물이 그대로 혼합되어 시커먼 소금이 천일염의 주류를 이루었지요. 염전에서 주변 함초를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리는 문제도 심각한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중국산 저질 소금 문제도 안타깝고요.”

강 대표는 소금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위생적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을 발굴한 끝에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 나오는 소금을 사용하고 있다. 해마다 이곳의 소금을 매입하여 저장해두고 3~5년 정도씩 간수를 빼면 촉감이 보송보송하고 쓴맛이 사라지는데 이런 상태가 된 소금만을 가려 쓰고 있다.

그러나 최근 증도에도 위락시설이 차츰 늘어나 혹시 염전의 오염원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 한식세계화의 또 다른 장애물 화학조미료
강진명 대표는 어머니를 통해 반가의 정통 한식을 먹고 자란 개인적 체험에 대해 무척 감사하다고 말한다. 어렸을 적에 경험한 한식이 평생 한식 연구의 나침반 구실을 해주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에 느꼈던 맛, 보았던 차림새, 따라했던 조리 과정이 지금의 그에게 기준이 되고 있다.

남다른 한식체험을 했던 그녀에게 최근의 한식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기준에 못 미친다. 가장 강 대표를 당혹스럽게 하는 부분이 화학조미료 사용 문제다.

“한식집 운영하면서 5년 동안 주방 사람들과 숱하게 싸웠습니다. 화학조미료 사용 때문이었지요. 숨겨놓고 쓰는 화학조미료를 제가 찾아내곤 했거든요. 제가 직접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서 종업원들에게 먹여 체험을 하도록 합니다. 화학조미료 없이 맛을 내지 못하는 조리사는 진정한 한식조리사가 아닙니다. 한식은 원래 화학조미료에 의존하는 음식이 아니거든요.”

한식에 화학조미료 투입이 근절되지 않는 구조적 원인으로 그녀는 식당의 ‘찬모’제도를 지목했다. 이들은 대개 전문적 조리교육을 받지 않고 전임자나 다른 찬모에게 반찬 만드는 법을 배운다는 것. 이 과정에서 화학조미료로 맛을 내는 방법이 전수과정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지 반찬 만드는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한식의 기본인 ‘반찬 만들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과정 인증제를 만들어서 일정한 교육을 받은 인력이 식당에 배치되고 반찬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강 대표는 한식세계화에 앞장 서야할 인사들조차 화학조미료의 맛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 전수자의 권위적 태도나 과학적 조리이론 부족 등 극복해야

강진명 대표가 한식세계화를 가로막고 있는 우리 외식업계의 병폐를 또 하나 지적했다. 언제부턴가 외식업계도 권력화 되어있다는 것이다. 외식분야의 이너서클을 형성하는 분들이 배타적이고 권위적이어서 다른 목소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강 대표가 어느 저명 한식 조리장에게 한식조리를 배우러 갔다가 아주 난처한 경험을 했다. 우선 그의 조리 방법이 너무 비위생적이어서 놀랐고, 권위적인 교수방법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한다.

어느 특정 요리를 배우고자 찾아갔더니 마늘 다지는 작업만 계속 시켰다는 것이다. 또 조리에 관한 것을 질문해도 ‘묻지 마라’는 태도를 시종 견지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한국에 진출한 프랑스 조리교육 과정에서 강사들이 ‘뭐든지 물어보라’는 자세와 너무 차이가 났다고.

폐쇄적인 조리 전수자의 태도도 문제지만 식재료나 조리 과정이 과학적으로 규명되거나 체계화되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프랑스의 경우 어떤 음식이 있으면 그 음식의 조리법이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이 과학적으로 규명되어, 대외적으로 그 음식 존재의 당위성과 신뢰성을 보장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황혜성 선생이 궁중음식 분야를 체계화시켜놓아 다행인데, 그나마 이것을 빼고 나면 음식과 조리 분야의 체계화 과학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황무지나 다름없다고. 이런 상태에서 한식세계화를 추진하다보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강 대표에 따르면 역사에도 발달단계가 있듯이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요리가 국민요리로 자리 잡기까지 일정한 발전단계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발달단계를 거치지 못한 것도 한식세계화를 더디게 하고 있다고.

예를 들면 특정 지방의 가정에서 먹는 어떤 요리가 사회 변혁기에 인접 지방이나 국가에 알려지고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하나의 국민요리로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하지만 한식은 일제강점기, 미군정기, 한국전쟁기를 거치고 우리 스스로의 내부 변혁기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문화와 외국 음식의 급격한 유입으로 그런 발달단계의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 “정통 한식의 유전자 제대로 계승하고 싶습니다”
강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과연 한식세계화의 장애요소들이 외식업계에 많이 잠복해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앉아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지 그 대안을 물었다.

그녀는 우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지상태로 돌아가 진짜 한식이 무엇인지부터 하나씩 탄탄하게 정의를 내리고 체계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몇몇 저명인의 허명에 휩쓸리지 말고 진짜 정통 한식을 계승한 사람을 찾아보고, 뿌리가 있는 음식인지 객관적으로 역사적으로 고증하여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숙련 선생이 보유한 조리법이 서울 반가 음식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런 분들을 발굴, 조리법을 확보하고 체계화하여 일반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식의 정체성과 뿌리가 이렇게 튼실하게 완성되면 이것을 토대로 다양하게 응용하는 단계를 펼쳐야 한다고. 구한말에 나왔던 일종의 동도서기론이다. 우리 한식에 뿌리를 두고 이탈리아 요리든 프랑스 요리든 접목을 시켜 새로운 형태의 음식을 무궁무진하게 창조하는 단계로 발전시켜야한다고. 강 대표는 개인적으로 프렌치스타일의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 우선 우리의 꼬리찜을 웨스턴식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현재 서울 이촌동에 개점한 <키친 ? i>의 콘셉트가 바로 이 단계에서 선보여야 할 요리들이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아직 한식세계화의 성숙단계인 응용단계에 와있지 못하지만 강 대표 나름대로 전통에 뿌리를 둔 웨스틴 요리들을 앞서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정통 한식의 유전자를 제대로 계승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지가 반영된 요리들이다.

◇ 새로 출시한 라따뚜이샐러드 등 계절 신메뉴, 호응 뜨거워
<키친· i>는 가을과 겨울철을 맞아 라따뚜이샐러드(7000원)와 치킨라이스(1만2000원)를 새로운 메뉴로 내놓았다. 라따뚜이샐러드는 강 대표가 110년 전통의 프랑스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숙명 아카데미’에서 배운 조리법을 바탕으로 만든 100% 프랑스 정통요리다.

라따뚜이(ratatouille)는 남프랑스의 니스 지방에서 즐겨먹는 전통적인 야채 스튜. 가지, 토마토, 피망, 양파, 호박 등 5가지 채소를 올리브유에 볶아서 만든다. 특히 마늘과 토마토 퓨레, 토마토 소스 등을 으깨어 익혀놓았다.

갓 구운 치아바타 빵을 썰어 샐러드를 올려서 먹는데 야채의 풍미와 함께 토마토 소스 맛과 올리브유의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프랑스 요리 가운데 쉽게 접할 수 있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치킨라이스는 기름에 튀기지 않고 오븐에 넣어 구운 닭과 강황을 넣은 밥, 그리고 신선한 샐러드가 어우러진 건강식이다.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인 닭을 마늘과 로즈마리에 재어 썼고, 기름에 잠가 튀기지 않아 칼로리 량을 줄였다.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키친 · i> 콘셉트에 대한 마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강진명 대표의 음식철학에 대한 공감대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라따뚜이샐러드와 치킨라이스의 호응도 출시와 함께 뜨거워 추동기 메뉴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강진명 대표는 평생 ‘건강식’이라는 화두를 잡고 사람에게 이로운 건강 음식에 대한 연구 개발과 교육에 꾸준히 매진해 왔다. 이제는 외식업계에 진출, 그동안의 성과물을 현실에 반영하고자 애쓰고 있다.

때로는 정통한식의 모습으로, 때로는 샐러드나 웨스턴 스타일의 모습으로 그녀가 꿈꾸는 이상적인 음식들이 속속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일련의 이런 작업들이 완성되는 순간 ‘푸드 플래너(Food Planner)’로서 강진명 개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을 음식의 중심에 둔 우리나라 외식업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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