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독일의 남유럽국가 길들이기

머니투데이 이상묵 삼성생명 보험금융연구소 전무 | 2011.11.14 17:00
유로위기가 이탈리아로 전이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시장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무너지면 유로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물론, 세계경제가 리먼 사태 때보다 더 큰 충격을 입을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공통된 견해다. 그럼에도 유로권의 대응은 여전히 굼뜨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조바심을 내는 형국이다.

그동안 유로국가들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문제를 키워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문가들은 시장을 압도할 수 있는 '바주카포' 수준의 대책을 마련하면 포를 쏘지 않고도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유로국가들은 상황이 악화되면 필요최소한의 대응책을 내놓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일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17개 유로국가의 의회로부터 동의를 받는 정치적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는 유로체제로는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번 동의를 받을 때 시장에 두 발, 세 발 앞서는 대응책을 만들 필요가 크다. 유로지도자들이 이런 점을 모를 리도 없다.

그럼에도 뒷북치기가 반복되는 데에는 독일의 소극적인 태도가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프랑스가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할지도 모르는 마지노선에 걸려있는 상황에서 '바주카포'의 제조를 주도할 수 있는 국가는 독일이 유일하다. 그러나 정작 독일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남의 나라가 흥청망청한 결과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내가 낸 세금이 사용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국민은 없다. 그러나 독일의 입장은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는 원칙론을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다. 이번 위기는 방만한 재정운영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고통 없이는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쉽게 문제를 해결하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래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90년대에 걸쳐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고 국민연금을 감축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한 바 있다. 그 과정은 길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의 결실로 지금과 같은 재정건전성과 기업경쟁력을 확보했다. 독일은 남유럽국가들도 자신들과 같은 과정을 거칠 것을 고집스럽게 요구하고 있다.

유로위기가 이탈리아의 문을 두드리면서 전문가들은 유럽중앙은행의 역할을 전격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연준처럼 최종대부자로서 발권력을 동원해 위기 진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입장을 감안하면 이런 방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독일이 역사적인 이유로 인플레이션에 민감하기도 하거니와 돈을 찍어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면 독일이 주장하는 고통스러운 개혁은 물 건너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로위기를 일거에 진정시킬 수 있는 방안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앞으로도 채택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판이 깨지지 않도록 필요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면서 남유럽국가에 고통스러운 개혁을 압박하는 길고 지루한 줄다리기가 지속될 것이다. 뒷북치기가 그 자체로 의도된 전략인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나치 깃발을 든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하는 등 남유럽 전체가 반독일 감정으로 들끓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런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유럽의 위기가 해소되려면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유로권이 긴 경기침체에 빠지더라도, 독일이 같이 경기침체를 겪더라도, 남유럽국가들에게 규율을 가르치기 위해 불가피하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속내가 담겨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원칙과 고집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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