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에서 불붙은 '성매매 전쟁'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 2011.04.23 08:00

[출동!사건팀]영등포역 앞 집창촌, 경찰 단속에 정적만…

지난 21일 오후 9시. 영등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찰관들이 성매매 단속에 나섰다.

"1차선으로, 인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가." 차에 탄 경찰관들은 행여나 성매수자들이 얼굴을 알아볼까 영등포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렸다. "오면서 보니 망보는 애들 몇 명 있던데 떨어져서 각자 이동하자." 계장의 지시에 4명의 경찰관은 흩어져 단속을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어떻게 알았는지 오토바이 한대가 뒤에 붙었다. 이미 망보는 사람들이 눈치를 챘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경찰관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단속을 계속했다.

오정문 여성청소년계장은 "현행범을 잡지는 못하더라도 단속을 하고 있다는 걸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며 "경찰이 순찰 도는 것을 보면 성매매 여성들은 장사를 못하고 이는 자연히 단속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동행했던 순찰차에서 봤던 역 근처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할머니들은 단속이 시작된 지 30여분 만에 모두 자취를 감췄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1999년 7월 1일 발효된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청소년 통행 금지구역으로 지정된 서울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40여개 업소에서 140여명이 이곳에서 생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유리문에서 여성이 호객행위를 하는 속칭 '유리방'은 사실상 휴업 상태다.

역 근처에서 1대1로 영업을 하는 '팸프'들도 경찰 눈치가 보여 영업을 하기 어렵다. 4월부터 시작된 영등포서의 강력한 단속으로 이곳은 업주들의 '눈치보기'와 경찰의 '단속'이 부딪히는 격전지가 됐다.

◇영등포서의 집중단속, 왜 지금?

영등포 경찰서의 집중 단속은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경찰은 1달이 지난 최근까지 성매매 집결지로 들어가는 골목길 앞뒤로 순찰차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상시 배치했다. 경찰관이 지켜보는 순찰차 앞에서 성매매를 과감하게 시도할 '간 큰 남자'는 없었다.

영등포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이번 집중단속을 반겼다. 지역의 주요 현안인 성매매 집결지 문제가 해결 기미를 보이기 때문이다. 전 의원에 따르면 이번 단속의 선봉에는 지난해 12월 영등포 경찰서로 부임한 이주민 서장이 있다.

전 의원은 "이 서장이 부임한 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성매매 집결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다"며 "이 서장은 단호하게 조치할 의지가 있었고 이번 단속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정문 계장은 "오랫동안 해결에 어려움을 겪던 문제"라며 이번 단속이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오 계장은 "성매매 집결지 근처에는 영등포 초등학교와 영원 초등학교가 위치해 '어린애들 보기 무섭다'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말했다.

오 계장은 "타임스퀘어가 들어서고 나서는 시민들의 유입이 많아져 민원이 더 늘었다"며 "성매매 집결지에 대해 확실하게 단속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상황"라고 덧붙였다.

지난 15일부터 경찰은 상시 배치하던 인력을 다시 지역 치안 강화로 돌리고 30분 단위 순찰로 단속 방법을 변경했다. 단속은 약간 느슨해 졌지만, 영등포서 관계자는 "순찰하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영업하는 것이 보이면 다시 순찰차를 상시 배치할 예정"이라며 '단속 의지'를 강조했다.


◇단속, 성공할 수 있을까

영등포 역 주변은 지난해 3월 서울시에서 발표한 '2020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안'에 포함돼 재정비가 예정된 지역이다. 전여옥 의원은 "이번에 확실하게 성매매 집결지를 없애고 '재정비'를 '재개발' 단계까지 끌어올리려는 계획"이라며 "서울시 측과 협상 중에 있으며 4월내에 협상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전 의원의 희망대로 지금까지는 이번 단속이 꽤나 성공하는 모양새다. 20일 오후 11시, 서울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고요했다. 성매매의 상징인 분홍빛 조명은 여전히 골목을 밝히고 있었지만 소위 '직업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성매매를 목적으로 이곳을 기웃거리는 남자들도 없었다. 30분 단위로 골목을 다녀가는 순찰차는 여기가 유명한 '홍등가'인지를 의심하게 했다.


인근 주민들은 이번 단속을 환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영등포에 거주하는 김모씨(42·여·주부)는 "대형 쇼핑몰이 생기고 난 후 이곳을 자주 방문하는데 아이들과 같이 나오면 신경이 쓰인다"며 "주차장에서 나오면 그쪽으로 자연히 시선이 가는데 이번 단속으로 확실하게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영등포역에서 만난 한 남성은 "단속한다고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이 어디로 가겠냐"며 "결국 음성적인 성매매만 늘리는 것 아니냐"고 단속 이후의 상황을 걱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단속을 안 할 수는 없다"며 "안마방이나 키스방 등 변종 성매매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에게도 살 권리를…"끝나지 않은 싸움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던 여인들은 살 길이 막막해지자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지난 14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까나리액젓을 몸에 뿌리고 백화점으로 진입하는 퍼포먼스 등을 벌였다. 지난 20일에는 전여옥 의원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집회에 참석한 김한별씨(38·여·가명)는 "집창촌 폐쇄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정부에서 제시하는 직업훈련 등은 현실성이 없다"며 "정부에서 지원하는 자활금 40만원을 가지고는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무조건 나가라고 하지 말고 유예기간을 주고 생활 터전을 마련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이들에게 주어진 유예기간은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 부터였다"며 "직업훈련 등을 통해 충분히 재활이 가능한데 이들이 지금 와서 또 다시 유예기간과 거주지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다시 성매매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4월 말에 여의도에서 전국 성노동자 2000~300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전 의원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마음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영등포경찰서도 단속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앞으로 경찰과 업소들 사이의 긴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영등포 역 앞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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