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대통령이 버티는 이유

머니투데이 최종일 기자 | 2011.02.11 16:50

사우디 등 주변국 힘의 공백 우려.. 軍 역할이 최대 변수

↑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반정부 시위 17일째인 10일 전세계 언론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사임이 임박했다고 전했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대는 이를 기정사살화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카이로의 봄'은 성큼 다가왔었다.

하지만 무바라크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시위대의 기대를 저버렸다. 오는 9월 대선 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점진적으로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불타는 민심에 불에 기름을 붙는 격이 됐다.

분노한 시위대는 11일(현지시간) '금요 예배'후 대규모 시위를 예고, 이집트의 정정불안이 되돌릴 수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집트 정치학자 오사마 가잘리 하브는 "국민들의 요구가 어떻든 간에 대통령직을 고수하겠다는 무바라크의 태도는 큰 재앙을 야기할 수 있다"고 무바라크 대통령의 연설을 평가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위대의 요구에 귀를 닫는 이유는 뭘까.

◇권력의 급적인 교체보다 평화적 사태 해결 기대

이는 이집트 사태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권력의 공백에 따라 기존 질서에 균열이 발생하고 정국이 요동치는 것은 어느 나라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1979년 이란 혁명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집트 사태가 귀결되는 것은 주변국들이 가장 꺼리는 부분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등 아랍 왕정국가들은 혁명의 불길이 자신들에게 번질까 우려하고 있다. 이집트에 대한 서방국의 압박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압불라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대이집트 군사원조를 중단할 수 있다는 미국의 압력과 관련,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미국이 이집트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면 사우디가 이를 대신 지급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도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집트는 1979년 중동국가중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며 평화협정을 맺은 후 아랍세계와 이스라엘의 공존을 보장하는 수호자역을 해왔다. 무바라크는 그 중심 인물이다. 에후드 바락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집트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이집트 국민들이 헌법에 따라 결정할 일"이라며 서방 국가들의 압박은 적절치 못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스라엘, 사우디와 전략적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무바라크의 퇴진을 촉구할 수만은 없다. 이집트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 이집트와의 돈독한 관계는 물 건너가게 될 뿐 아니라 이슬람 정책의 중요한 한 축을 잃게 된다는 점도 미국이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이다.

미국이 이번 이집트 사태와 관련 오락가락한 인상을 풍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집트 사태 초기인 지난달 28일 백악관은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재검토할 수 있다며 무바라크를 압박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사흘 뒤 "지원 감축 의향이 없다"며 입장을 바꿨다.

오바마 대통령도 10일 밤 무바라크의 사임 거부를 보고 받은 뒤 "부통령에 대한 권한 이양이 충분한 것인지 아직 불분명하다"며 "이집트 국민들이 정부가 진정한 민주주의 이양에 대해 진지하다고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바라크 대통령의 직접 사퇴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위대들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이 같은 주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입지가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야에 따른 권력 공백보다는 평화적 사태 해결을 바란다는 것. 자신이 향후 정국 운영의 키를 쥐고 있는 군 출신이라는 점도 그가 믿는 부분이다.


이와 맞물려 일각에서는 무바라크가 다시 권력을 되찾을 것이라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집트 정치비평가 하싼 나파는 "술레이만은 의회를 해산시킬 수도 내각을 교체할 수도 없다. 대통령의 동의 없이는 개헌을 요구할 수도 없다"며 "무바라크는 여전히 술래이만의 뒤에서 권력 통제권을 움켜쥐고 있다"고 분석했다.

↑ 10일 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 모습.
◇軍이 향후 국정 운영의 키를 쥐고 있어

무바라크 대통령이 통치권을 부통령에게 이양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이집트의 정책결정 과정에서는 앞으로 군의 역할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카이로를 비롯해 이집트 주요 지역에 운집한 시위대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군은 아직까지 시위대를 해산시키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시위가 더욱 과격한 양상을 띠게 되면 군으로서는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 지지자들 가운데 한 세력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로즈마리 홀리스 런던시티대학 중동정책연구소 교수는 "시위대는 대통령의 퇴진 거부에 무척 실망했기 때문에 시위 양상이 앞으로 더욱 과격해질 수 있다"며 "군으로서는 어느 한 세력을 선택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날 대통령 연설에 앞서 이집트 군 최고 위원회는 '성명 1호'를 발표하면서 무바라크의 부재 상황에서 국가의 안위를 위한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각에서는 쿠데타와 흡사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나빌 압델 파타 카이로 정치전략연구소 애널리스트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무바라크 없이 군 수뇌부가 회동했다는 사실은 군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집트 권력의 중심축이 군으로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바라크 정권 자체가 군부 정권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1952년 왕정을 무너뜨린 가말 나세르 등 '자유청년장교'들의 쿠데타이후 이집트는 60년 동안 줄곧 군사정권이다. 무바라크 역시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부통령으로 지내다 전임자인 사다트가 암살당하며 대통령을 승계했다.

현 술레이만 부통령 또한 군 정보국장을 지낸 군부인사이다. 그러한 그가 전면에 나섰다는 것은 군부 자체가 무바라크의 영예로운 2선 퇴진과 안정적인 정권 이양에 대한 함의를 이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따라서 군이 나선다면 친위 쿠데타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나훈아 '김정은 돼지' 발언에 악플 900개…전여옥 "틀린 말 있나요?"
  2. 2 남편·친모 눈 바늘로 찌르고 죽인 사이코패스…24년만 얼굴 공개
  3. 3 "예비신부, 이복 동생"…'먹튀 의혹' 유재환, 성희롱 폭로까지?
  4. 4 동창에 2억 뜯은 20대, 피해자 모친 숨져…"최악" 판사도 질타했다
  5. 5 명동에 '음료 컵' 쓰레기가 수북이…"외국인들 사진 찍길래" 한 시민이 한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