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비정한 人事'의 말로

머니투데이 성화용 부국장 | 2010.02.02 07:40
A그룹의 금융 계열사 대표를 하던 B씨는 지난해 가을 갑자기 해임 통보를 받았다. 새 대표이사를 선임하기 불과 이틀 전, 그가 취임한지 1년만이었다. 통보를 받은 순간 머리 속이 멍해졌지만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경영실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왜 잘려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두 달여가 지난 지금도 그는 밤에 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 아직 체념의 단계까지 가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모양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그룹의 또 다른 금융계열사 대표 C씨가 그 몇 달 전에 거의 비슷한 일을 당했다. 취임한지 1년 남짓, 특별한 사유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그만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당시 그의 반응은 격렬했다. “내가 그냥 당할 수 없다”고 했고 “부당한 인사조치를 한 만큼 (A그룹은) 그 이상의 상처를 각오해야할 것”이라고 분을 토했다. 그의 지인들이 그를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반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는 가벼운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B씨와 C씨가 해임된 것은 물론 A그룹 인사권자의 의지에 따른 것이며, 정책적 결정이다. 문제는 인사권자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명확치 않다는 데 있다. 합리적인 인사는 당사자와 그 주변이 납득할만한 사유를 동반한다. A그룹의 인사는 돌발적이며 비정했다. 당사자들이 준비할 시간을 주지도 않았다. 그들은 마음의 준비도, 실직 후 일자리를 알아볼 준비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해임 통보를 받았다. C씨의 표현대로라면, A그룹은 그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이다.

그 후유증이 회사를 떠난 사람에게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돌연한 인사 조치 이후 A그룹은 알만한 사람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인사권자의 평판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언제 돌연 잘릴지 모르는 그룹의 고위직들은 말 못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유형의 인사조치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최근 금융계의 이슈 메이커로 떠오른 D씨도 ‘등에 칼을 꽂는 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 A그룹과 다른 게 있다면, 적어도 당사자는 그 배경을 명확히 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반대편에 선 인물을 용납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다가 허를 찌르듯 인사를 통해 내심을 드러낸다. 가차없이 자른다. 때로 유배를 보내기도 한다. 당한 사람들은 이유를 알면서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들 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충분한 사유가 있다 해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인사상의 불이익은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불합리한 인사는 결국 당사자에게 원한을, 조직에는 상처를 남긴다. 그로 인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정교한 인사 시스템을 만드는데 공을 들이고 평가와 보상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사람을 쓰고, 버리는 일은 경영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칼을 휘둘러 삿된 이익을 취하거나,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며 잠시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길게 보면 칼날은 자신을 향해 있음을 알게 된다.

긴 시간 칼자루를 쥐고 있던 인사권자 D씨가 최근 자신의 목을 겨눈 칼날을 바라보며 어떤 심경일지 궁금하다. 최근 몇 년 새 유수의 재벌그룹 오너들이 그 절대 권력을 가지고도 참혹한 곤경에 몰린 적이 여러 번이다. 따지고 보면 대개 사람 잘못 버려서, 또는 잘 못 써서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의 일이란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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