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과유불급'의 경제학

머니투데이 성화용 부국장/시장총괄부장 2009.10.2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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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부사)’로 설명돼 있다. 지나치다, 과(過)하다는 의미를 담은 부사는 원칙적으로 긍정적인 서술어와 함께 쓸 수 없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이 ‘너무’를 어법에 맞지 않게 쓰는 경우가 흔하다. 너무 좋다, 너무 잘한다, 너무 맛있다고들 한다. 물론 최고의 긍정적인 표현이다. 방송 출연자들이 “너무 예뻐요”라고 외치면 그나마 방송 작가들이 자막에 ‘매우 예뻐요’ 정도로 고쳐놓는다.



그래도 대중들의 말투는 바뀌지 않는다. 그야말로 ‘너무 흔하게’ 쓰는 표현이 됐다.
이러한 현상에는 함의가 있다. 좋고 , 잘하고 , 맛있고 , 예쁜 것에 대한 극단적인 기대. 적당히 좋고 , 적당히 잘하고 , 적당히 맛있고 , 적당히 예쁜 건 그저 시큰둥할 뿐이다. ‘매우’ 또는 ‘굉장히’ 좋은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다.

결국 직성이 풀리려면 차서 넘쳐야 한다. 그만큼 치열한 자극을 바라다 보니 부정을 긍정에 호응토록 한, ‘너무한’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일상화된 것이다.



이 ‘너무’의 긍정화가 경영과 시장에도 배어들었다. 어느샌가 기업 경영자들과 시장 참여자들은 적당한 가격, 적당한 경쟁, 적당한 성장을 마뜩잖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적당한’을 마치 ‘거저 먹는’ ‘공짜로 얻는’과 비슷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너무 좋은’ 결과를 좇고 , ‘너무 잘했다’는 평판을 원한다. 그래서 평범하지만 합리적인 선택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하다. ‘너무 잘하기 위해’ 도를 넘은 선택을 할 경우 어김없이 비용을 치르게 한다. ‘너무’에 대한 일종의 징벌인데, 지나고 보면 예외가 거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자금난을 겪으면서도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중견그룹. 대표적인 A그룹은 1년반 전에 이미 적당한 가격에 지분을 팔 기회가 있었지만 경영진의 욕심은 그 이상이었다. ‘너무 좋은’ 가격을 찾다가 실기했다. 지금은 그 적당한 가격의 3분의2가 안되는 값에도 원매자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B그룹 역시 거의 비슷하다. 계열 금융사를 팔 기회가 있었지만 ‘너무 좋은’ 조건을 바랐다. 이리 저리 미루는 동안 유동성 위기가 찾아와 험악한 상황으로 몰렸다.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갑자기 투자은행(IB) 업무에 불을 지핀 C증권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좋은데, 문제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덤핑 공세와 상식밖의 조건을 내걸어 남의 딜을 빼앗는 게 예사. 동업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니, 끝이 좋을 지 의문이다.

M&A를 하겠다고 나선 D기업. 수수료를 적게 내려고 자문사들을 쥐어짜기로 유명하다. 비용을 줄이는 건 좋은데, 그게 지나쳐 결국은 사고가 났다. 법률검토를 제대로 못해 자격이 안 되는 크로스보더 딜에 뛰어드는 어이없는 실수가 나온 것이다.

‘너무’ 잘해보려다가 일을 망친 게 어디 이뿐이랴. 그런 사례는 어제도, 오늘도 넘쳐나고 있다. 성과주의에 매몰된 기업과 개인의 선택은 자본시장에서 항상 도를 넘어설 위험에 노출돼 있다. '너무’ 잘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잘하는 게 훨씬 좋은 결과를 낳는다. 그걸 알면서도 ‘너무’를 포기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일찍이 공자는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설파했다. 잘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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