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그로스 쇼크와 금융 공안정국

머니투데이 홍찬선 머니투데이방송 부국장대우 | 2008.09.07 18:42

[홍찬선칼럼]당국과 전문가의 '시장안정 의지'는 이해하지만...

“전 세계 금융시장의 쓰나미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자금을 투입해 시장을 부양해야 한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퍼시픽 투자자문(핌코, PIMCO)의 공동 대표인 '채권왕' 빌 그로스가 4일(현지시간) 자사 홈페이에 올린 글이 미국 다우지수를 3%나 끌어내렸다. “은행과 증권회사, 헤지펀드가 모두 자산을 내던지고 있어 채권과 부동산, 주식, 상품 가격이 일제히 하락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정부가 체크하지 못한다면 캠프파이어 화롯불에 불과하던 것이 대형 산불로 번지고 베어마켓 자산 시장은 파괴적인 금융 쓰나미로 확대될 것”는 그의 경고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미국 증시를 쓰나미처럼 강타했다.

물론 미국 실업자수가 늘어났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신용경색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악재로 작용했지만, 나스닥지수가 3.2%나 폭락한 것은 ‘그로스 쇼크’ 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증시가 빌 그로스의 말에 쇼크를 보인 것은 그의 말이 갖는 힘 때문이다. 그로스는 미국의 정책기준금리가 5%대였을 때 금리를 인하해야 하고, 2%로 인하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의 말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준금리를 연2.25%까지 인하했다.

그는 또 주택 가격 하락으로 금융권이 상각해야 할 자산이 1조 달러에 이를 것이란 분석도 제시했다. 이는 금융권이 상각한 4679억 달러의 2배나 되는 수준.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분석이지만, 그는 자신 있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시장에선 그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을 보였다.

빌 그로스의 발언과 뉴욕 증시 폭락을 보며 최근 며칠동안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금융감독원이 루머단속에 나서고,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 자산운용회사 펀드매니저들이 합동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제는 주식을 살 때”라고 선언한 것 등이 그것이다.

루머단속..시장 효율성 떨어뜨리고 규제이익 발생시킬 우려


우선 금감원의 루머단속은 금융시장이 어려워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 하지만 루머단속이 효과를 보기는 쉽지 않다. 시장메커니즘은 온갖 정보와 루머 가운데 잘못된 루머는 퇴출하고 옳은 정보만이 남아 가격이 효율성을 찾아가는 것인데, 루머를 인위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가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루머를 단속하면 허무맹랑한 루머만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정보의 유통까지 줄어들게 된다. 그 결과 선량한 투자자들은 피해를 입는 반면 루머단속에도 불구하고 루머에 접할 수 있는 일부 사람들은 단속의 이익을 보게 된다. 일종의 규제의 이득에 해당되는 독점이익인 셈이고, 그만큼 시장 효율성은 낮아진다.

코스피가 1400 아래로 떨어질 이유가 없다며 강세론을 펼치고 있는 한 자산운용회사 사장은 “시장에 맡겨 놓으면 하락세를 멈추고 안정을 찾을 것인데 ‘금융 공안정국’을 느낄 정도로 당국이 나서 호들갑을 떨면 정말 시장이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해 시장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증권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지금 시장상황은 악재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펀더멘털에 비해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고 밝히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주가는 전문가들이 싸다고 해서 오르지도 않고, 과열됐다고 한다고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개별 주식의 가치(수익가치와 자산가치 및 성장성)와 경제의 체력 같은 펀더멘털과 주식의 수요와 공급 및 투자자들의 심리 등이 종합적으로 아우러져 주가가 오르내릴 뿐이다.

이벤트보다 신뢰 회복이 급선무

당국과 전문가들이 할 일은 빌 그로스처럼 시장이 그의 말과 행동을 믿도록 신뢰를 쌓는 것이다. 신뢰를 얻지 못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희망과 의지만 갖고 정책을 펴거나 투자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주식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는 준비를 하지 않고 돈 벌겠다는 욕심과 희망만으로 증시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와 똑같다. 준비되지 않은 개인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허망하게 잃어버리듯, 당국과 전문가들은 안정되지 않은 시장에 보복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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