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없는 대통령과의 '독대'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 2008.06.02 13:12

[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 독대(獨對)는 오래된 제도다. 벼슬아치가 혼자 임금을 대해 여러 의견을 아뢰던 일이었다.

조선 시대 때도 빈번했다. 아이디어 없이 자리나 지키려는 신하가 없도록 따로 불러 의견을 구했다. 개별 면담이었던 셈이다.

독대를 가장 잘 활용한 임금은 세종이다. 독대라 해도 사관을 참석시키는 게 법도였지만 세종은 이들을 내보낸 채 밀담을 즐겼다.

반대로 조선 후기 성군으로 꼽히는 성종은 독대를 멀리했다. 신하들이 독대의 필요성을 강조했을 때도 "남이 보고 듣는 것을 두려워 해 할 말을 하지 못하면 어찌 신하된 도리를 다 할 수 있겠냐"고 일축했다.

# 대통령들도 독대를 즐겼다. 조언과 민심을 청취한다는 명분이었다. 집단적으로 조언을 듣는 것보다 개별적으로 듣는 게 더 훌륭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전해 줄 수 있다는 믿음도 깔려 있다. 그렇기에 독대의 대상은 주로 측근들이었다. 때론 친지들도 포함됐다.

하지만 독대가 변질돼 폐해를 낳은 경우도 적잖다. 이른바 '호가호위(狐假虎威)'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황태자, 소통령 등은 이미 경험한 바다. 정권의 위기를 불러온 경우도 있었다. 정보 독점과 밀실 정치 등 역시 부작용이다.

# 독대 반대론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독대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2년 전 일이다. 노 전 대통령 아래서 장관을 지낸 이희범 무역협회장의 발언이 발단이 됐다.

"참여정부 들어 장관들이 대통령과의 독대가 힘들어져 대통령과 생각이 달라도 설득할 수 없다"는 게 발언의 골자였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가정보원장과의 주례 독대를 없앴다. 여당 당의장과의 주례 회동도 하지 않았다. 고위 인사와 별도로 만날 경우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이 배석했다.

그리고 이를 자랑처럼 여겼다. "독대는 가신 정치, 안방 정치, 밀실 정치의 산물이었기에 폐지한 것"이라고 청와대가 받아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반대로 이명박(MB) 대통령은 독대를 즐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회동도 독대였다. 배석자는 없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날 때도 회동 후 20분 가량은 따로 대화를 나눈다. 그 때의 대화는 둘 만이 안다. "별 얘기 없었다"고만 할 뿐 공개되지 않는다. 다른 인사들과의 독대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비공개 일정의 경우 독대 사실 자체도 감춰진다. 청와대건 여당이건 '소통'의 한 부분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취임 100일 시점, 독대 성적표는 기대 이하다. 박근혜를 만난 이후 대표직 제안 여부를 놓고 장외에서 '진실 게임'을 벌인 해프닝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수많은 독대에서 민심이 전해졌다면 지금 상황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MB와 독대했다" "안가에서 만났다" 등 설만 흘리며 어깨에 힘만 주려는 독대는 나라를 망친다. 호가호위가 아니라 쓴소리를 위한 독대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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