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고딩'에 KO 당한 MB

머니투데이 박형기 통합뉴스룸 1부장 | 2008.05.23 15:11

촛불 시위대, '직접 민주주의' 실현

‘성난 촛불’이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 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송구스럽다", "가슴 아프다", "모두 제 탓이다" 등의 수사를 쓰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특히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청계천 광장에서 촛불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는 대목에서는 깊은 회한과 함께 진정성이 베어 나왔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나름대로 충분한 사과를 했다고 본다.

그러나 담화 발표 직후 머니투데이가 온라인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대통령의 담화에 불만족이라는 응답이 86%나 됐다. 반성은 인정하지만 미국과 재협상하라는 국민의 요구에는 무응답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기자는 이 정도도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고딩’들이 벌이는 철부지 행위, 좌파와 일부 반정부 세력의 사주로 인한 시위로 매도당했던 촛불 집회가 정당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완강했던 MB 정부를 생각해보면 대통령의 사과만으로도 촛불 집회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앞으로 미국 쇠고기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지 예단하기 힘들지만 정부가 국민의 요구를 수용해 미국과 재협상에 나서지 않는 한 사태는 진정되지 않을 것 같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찬성한다. 이를 지렛대로 FTA도 성사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미국 사람들이 먹는 쇠고기만 수입한다는 전제 아래서다.


사실 기자가 더욱 관심이 있는 것은 이번 시위의 의미다. 촛불 시위는 한국 현대사에 한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386으로 대표되던 운동권은 민주화 달성, 그리고 연이은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그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이후 한국 사회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이슈가 없었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끝난 뒤에 이렇다할 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쇠고기 사태가 첨예한 대립 전선을 형성했다. 대립의 최전선에는 이른바 ‘고딩’이 위치해 있었다. 쇠고기 사태가 고딩들까지 나서게 한 이유는 그 문제가 가지는 민감성 때문이었다. 청계천 광장에서 첫 촛불 집회가 열렸을 때, 가장 먼저 나온 구호가 “너나 먹어 미친소”였다. 이들은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소는 먹기 싫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머니 부대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우리 애들에게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는 먹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무슨 좌파고 우파고 이념이 개입될 소지가 있겠는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이기주의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인 ‘Y세대’적 논리와 감성만 남을 뿐이다.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 낸 것은 국회도, 시민단체도, 좌파도 아니었다. 이름 없는 청계천의 촛불들이었다. 한국의 고딩 또는 민초들은 온라인 공간을 통해 결집한 뒤 오프라인으로 내려와 시위를 벌였고, 결국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냈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이다. 21세기, 그것도 4800만의 적지 않은 인구를 가진 나라가 원시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셈이다. 이 같은 사례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인터넷의 힘이고, 대한민국의 힘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선우은숙 이혼' 유영재, 노사연 허리 감싸더니…'나쁜 손' 재조명
  2. 2 '외동딸 또래' 금나나와 결혼한 30살 연상 재벌은?
  3. 3 '눈물의 여왕' 김지원 첫 팬미팅, 400명 규모?…"주제 파악 좀"
  4. 4 '돌싱'이라던 남편의 거짓말…출산 앞두고 '상간 소송'당한 여성
  5. 5 수원서 실종된 10대 여성, 서울서 20대 남성과 숨진 채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