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EV71…암보다 두려운 바이러스, 21세기 덥치다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 2008.05.27 08:35
"21세기는 바이러스의 세기가 되거나,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5년 프랑스 의사 에릭 나타프는 '아담, 바이러스의 자서전'이란 책에서 바이러스가 인간을 압도할 수 있는 존재로서 나아가 인류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음을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말했다.

요즘 연일 지구촌 곳곳에서 벌이지는 상황을 보면 '바이러스의 힘'은 더 이상 문학의 영역이 아닌 실제적 공포다.

지난 세기말 등장한 에이즈에 이어 21세기에도 사스(SARS)에 조류독감(AI)까지 연이어 전염병이 곳곳을 휩쓸고 있다. 바이러스는 이번 세기 인류를 위협할 가장 큰 적으로 꼽힌다. 암도 그 다음이다.

에이즈 사망자는 발견 20여년 만에 20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2003년 사스로 900명이 사망했으며 AI도 2003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동남아와 중국, 아프리카 등에서 총 24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국내에는 아직 다행히 AI 인체감염 사례는 없지만 지난 4월1일 전북 김제에서 발생한 후 전국에 퍼져 가금류를 700만마리 넘게 살처분 했다. 특히 이번 AI 바이러스는 2003년, 2006년에 발생한 바이러스와 다른 종류인 것으로 보여 향후 인체 감염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지진이 강타한 중국 쓰촨성에는 장바이러스가 출현해 인근 몽골까지 번진 상태라 국내에도 퍼지지 않을까 보건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

바이러스 이외에 세균도 전염병을 많이 일으킨다. 중세 유럽을 엄습했던 흑사병과 150년 전 런던을 덮쳤던 콜레라는 대표적 '세균' 질환이다.

최근 중국, 미얀마 등 대형 재난 지역에 창궐하고 있는 가스괴저병(가스괴저균이 일으킴)을 비롯 각종 설사 전염병도 세균에 의한 것이 많다.

그럼에도 세균보다 바이러스가 일반적으로 더 '어려운 적(敵)'이다. 우선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 세균은 독자적으로도 증식이 가능하지만 바이러스는 숙주 없이는 증식이 안된다.

김경민 아주대 의대(미생물학) 교수는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세포 속에서만 증식한다. 따라서 바이러스만 죽이려다 정상 세포까지 상하게 할 수 있다"며 "바이러스에만 있는 특정 증식물질을 억제하는 방법을 써야 하는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바이러스가 더 무서운 건 쉽게 변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세균은 핵과 세포질, 세포벽 등을 갖추고 있는데 반해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인 핵산과 단백질로만 이루어져 있다. 크기도 세균이 50배 이상 크다. 바이러스는 전자현미경이 아니면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구조가 단순한 만큼 바이러스는 핵산의 염기서열이 조금만 달라져도 그 특성 자체가 변할 수 있다. 바이러스 유전자의 돌연변이 속도는 일반 생물보다 무려 50만 배나 빠르다는 연구도 있다.

↑재배된 림프구에서 나오는 HIV-1 바이러스
따라서 백신을 개발해도 변종의 정도가 심하면 무용지물이 돼 버린다. 에이즈가 여러 치료제를 섞어 쓰는 '칵테일요법'이 등장하면서 만성질환 수준으로 통제되고 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치료제에 내성을 지닌 변종 에이즈 바이러스의 출현은 항상 골칫거리다.

◇변종의 끝은 최악 전염병?

지난 21일 논란이 된 국내 AI 바이러스의 인체감염 여부도 변종이 문제였다. "국내 AI 바이러스는치사율 높은 중국 안후이형(2.3형) 계통은 맞지만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2.3.2형으로 2.3형이 인체 감염이 됐다고 2.3.2형도 위험이 그만큼 높은 것은 아니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었다.

장바이러스도 그 일종인 엔테로바이러스(EV71) 변종에 감염돼 사망한 사례가 나와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 위생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김 교수는 "에이즈나 장바이러스, AI는 모두 RNA 바이러스인데 일반적으로 이 바이러스는 증식 과정에서 잘못되면 고치는 능력이 없어 변종이 많다"며 "지금 사람들이 앓고 있는 독감 바이러스도 100년 전에는 조류 바이러스였듯이, 바이러스는 유전자 재조합 과정을 거쳐 인체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H5N1 바이러스의 전자마이크로그래픽
고병원성 AI 바이러스 H5N1도 포유류에서 먼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다음 인체에 감염됐을 것이라는 게 학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설이다.

변종을 거듭하다 보면 사람 대 사람의 전염 가능성도 있다. 이미 베트남에서는 조류독감으로 사망한 11살 아이를 돌보던 어머니가 3주 후 사망한 의심사례가 보고됐다. 이 어머니는 감염 조류와 접촉이 없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AI의 사람 대 사람 감염을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우준희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몇 년 전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장바이러스 연구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바이러스 전염병 연구는 어려운 만큼 경제논리를 넘어 장기적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4만명 분의 AI 예방백신 구입 예산을 편성했으나 정부는 "AI 감염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두 버려야 돼 살지 말지 망설이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는 250만명, 일본 3000만명, 미국 4450만명 분의 비축량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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