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국인이 특별한 이유는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 2008.03.10 12:31

[패션으로 본 세상]'모두 함께(all together)' 정서에 관하여

얼마 전 홍콩 무역협회의 초청으로, 홍콩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주제는 '한국시장에 대한 고찰'. 참관인은 홍콩패션위크에 참가한 세계각지의 패션관계인들이었다.

홍콩패션위크는 세계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행사여서 해마다 이 곳에서 세미나를 열고자 시도하는 곳들이 많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홍콩에선 하필 '한국'에 관해 세미나를 하기로 정했다. 개인적으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참관인이 적을까봐 무척 염려되었다. 관심을 가져준 홍콩은 정말 고맙지만, 한국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하지만 세미나 당일, 의외로 대회장은 꽉 찼다. 그리고 세미나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협회측은 의자를 더 배치해야 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앉을 자리가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독특한 설레임을 느껴보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낯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도 그러했지만,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열기가 그 회장 안에 분명히 있었다.

세미나는 한국의 유통환경과 소비자 특성에 관한 파트로 나뉘어있었다. 나는 한국 소비자의 특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 한 컷의 사진을 준비해갔다. 한 지하철 역에서 시민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전철을 밀어내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람들은 그 사진 속의 한국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진은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에 사람이 끼이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를 구하고자 시민들이 힘을 합하여 전철을 밀어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아마도 그들이었다면 119에 신고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갑자기 사람들이 전철을 밀고 있는 시츄에이션은 사실 한국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말해주는 한국인의 특성은 바로 '모두 함께(all together)'라는 정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집안의 일, 마을의 일 등을 다함께 해결해온 우리에게는 '모두 다함께'라는 인식은 매우 강하고도 익숙하다.

이런 우리의 특성은 때로 기적을 낳는다. 몇 년이 걸릴 거라는 태안 청소작업도 몇 주 안에 가시적 성과를 보였고, IMF때는 너나 할 것없이 금을 모아 나라를 구하려 했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 때, 나는 외국인친구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시간을 내어 단체로 응원을 연습하느냐, 어쩌면 그렇게 훈련이라도 받은 양 딱딱 맞게 구호를 외치느냐"고 말이다.

우리 입장에서야 좀 우스운 이야기이다. 뭐 그런 응원에 따로 연습이 필요하겠는가. '우리의 모두 다함께'라는 본능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저절로 알게 해준다. 저절로 손뼉치는 박자를 따를 수 있고, 다음에 나올 구호들을 틀림없이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모두 다함께'가 통하는 순간이야말로 한국인들이 가장 행복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때이다. 비록 필자가 남다른 애국주의자는 아니지만, 누가 내게 '한국이 왜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점을 얘기할 것 같다.

그러나 이 같은 '올 투게더' 정신은 가끔 지나친 평등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다 똑같아야 되는데, 이것이 성립되지 않으면 좀 불안해지는 것이다. 누군가 갑자기 뒤쳐질 때, 아니면 누군가 갑자기 독보적으로 발전할 때, 올투게더가 갑자기 깨져버리는 순간에 우리는 쉬이 당황한다.

당황은 조급함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사실은 그런 때일수록 발전한 사례, 실패한 사례를 차근차근 연구하고 접근해야 하지만, 그렇게 늦게 출발하는 것은 너무 불안하므로 일단 '무조건 따라하기' 모드로 스스로를 전환시킨다. 그렇게 해야만 다시 올투게더 선상에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차근차근이나 '스텝 바이 스텝'이란 말은 먼 것이 된다. 클라이언트들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두 번 놀라곤 한다. 모든 사람들의 책장에 '블루오션'이 꽂혀있음에 놀라고,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실은 그 책이 몇 페이지도 채 읽혀지지 않았음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런 우리만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세상에는 있다. 하나의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자본과 노력, 시간을 투자하는, 한 마디로 제대로 하려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기회를 우리는 잘 찾아 낸다.

한국 기업들 중에는, 이미 몇 나라 정도에 알려진 유럽의 브랜드를 매입하여 육성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브랜드들은 여전히 프랑스 브랜드나 독일 브랜드로 인식되며 팔려나가고 있지만 실제 기업은 한국에서 운영한다. 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기업들이 운영할 때보다 더 착실한 글로벌화를 밟아나가고 있다.

그러니 과연 한국인의 특성을 어떻게 평가하겠느냐고 물어온다면, 이것은 대답하기 난감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특성은 특성일 뿐이고, 그에 맞는 기회와 기회비용이 엄연히 별다르게 존재할 뿐이니 말이다.

세미나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다 하지는 못했다. 1시간 반이라는 시간은 생각외로 빨리 갔다. 흥미로운 것은 세미나가 끝난 뒤의 일이었다. 사람들이 질문할 것이 있다면서 연단 앞으로 모여들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들 스스로 줄을 서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도대체 한국의 무엇에 관해 그들이 궁금해 했느냐고? 그것은 명확한 실체라기 보다는 호기심과 관심이 어우러진 아주 독특한 것들이었다. 서방 언론 중 하나가 2008년의 문화 코드중 하나로 K-pop(한국의 대중문화)을 꼽았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아직까지 한국이란 나라가 일본처럼 세계시장에서 존중받지는 못해도지금 이 순간, 어느 정도 한국인은 매력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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