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박정희 대통령의 환생과 BBK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 2007.12.18 11:01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나고 있다. 17대 대통령 선거 유세전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구애가 끊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 환생(還生)의 이유는 ‘표에 대한 구걸’이다. 경로는 2가지다. 하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구애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회복, 특히 일자리 창출에 대한 유권자의 요구다.

박 대통령의 장녀인 박 전 대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대선 후보들은 박 대통령 칭찬에 나선다. 박 전 대표가 대구와 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20대 실업률과 ‘사오정’으로 표현되는 40대 후반의 ‘실업자 가장(家長)’의 표를 얻기 위해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박 대통령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 환생을 주도하고 있는 대선 후보들은 ‘표의 구걸’에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을지 몰라도 심각한 ‘가치의 전도’를 겪는다. 박 대통령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경제를 발전시켜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절대빈곤을 퇴치하는 데 기여했지만, 깨끗하고 도덕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공격할 때는 ‘BBK 주가조작 의혹’을 내세우며 도덕적 잣대를 드리우는 대선 후보들이, 결코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는 박정희 대통령을 매개로 표를 구걸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여진다.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의 말이면 시장에 호랑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으로, 근거 없는 루머라도 사람들의 입을 타고 돌고 돌면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계하는 말이다. 삼인성호는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曾參의 고사’가 나온다. 증삼과 성과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이 사람을 죽였는데, 어떤 사람이 曾參의 어머니에게 “증삼이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자 어머니는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둘째 사람이 와서 “증삼이 살인했다”고 해도 듣지 않았지만 셋째 사람이 와서 말했을 때는 (증삼이 살인한 것으로 믿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물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도 있다.

내일 운명이 결정되는 17대 대선은 직선제가 부활된 1987년 이후 최악의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5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을 어떻게 경영하고 국민들에게 어떤 살림살이를 제공할 것이며, 5년 이후의 장래에 대해 어떤 기틀을 준비할 것인지 등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지 않고 실체가 없는 루머에 얼룩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때부터 BBK로 시작해서 공식 선거전이 끝나는 오늘(18일)까지 BBK가 다툼의 중심에 있었다.

검찰은 ‘BBK 주가의혹’ 사건을 '김경준 전 BBK 대표의 사기사건'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검찰이 50여명의 수사관을 투입해 밝혀낸 객관적 증거는 거들떠보지 않으려 하고, 사기꾼과 공갈범의 주장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무리 싫어하는 것이라도 자주 보고 들으면 익숙해지고 좋아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단순노출효과(Simple Exposure Effect, 에펠탑효과라고도 함)’처럼 방송과 인터넷 등에서 반복적으로 의혹을 제기하자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여기는 이미지가 형성된 탓으로 분석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이 검찰 수사의 객관성을 신뢰한다고 밝혔지만, 여론에 밀려 재수사 검토를 지시했다. 반쪽 국회는 특검을 의결했다. 2002년 16대 대선 때 ‘김대업 마타도어’의 희생양이던 이회창 후보(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제2의 김대업으로 판명될지 모르는 김경준에게 목숨을 거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유방을 도와 항우를 격파하고 한나라를 세우도록 하는데 기여했던 진평은 ‘형수와 놀아났다’거나 ‘금을 뇌물로 받았다’는 등의 악의에 찬 중상모략에 시달렸다. 진평은 앞의 루머에 대해선 일언반구의 대꾸도 하지 않고 잦아지기를 기다렸지만, 뒤의 루머에 대해선 유방에게 뇌물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신이 올린 계책에 쓸만한 것이 있으면 써주시고 그렇지 못하다면 쓰고 남은 황금을 싸서 관청에 보낼테니 사직하게 해달라”고 밝혔다. 유방은 ‘능력과 행실’을 구분하여 진평을 재신임했고, 그의 천하통일에 힘쓰게 했다.

반면 임진왜란 때 선조는 연전연승으로 왜놈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조선의 희망이던 이순신을 근거 없는 루머와 모함에 따라 전쟁 중에 서울로 압송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뒤 안전지대였던 호남이 어떻게 유린됐는지는 너무 고통스러워 글로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다.

비도덕적인 일을 하는 것은 당연히 죄이다. 하지만 도덕적이나 능력이 없는 것도 죄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제적 능력과 의학적 지식이 모자라, 딸아이의 머릿속에 종양이 자라 성장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몸무게가 17.5kg에 머물도록 하고 시신경의 압박으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방치한 부모는 착하고 도덕적이지만 딸을 고통에 빠뜨리는 죄를 진 것이다.

이제 17대 대선의 운명은 내일(12월19일) 유권자들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대선 후보 10명 중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는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5초의 선택이 앞으로 5년, 아니 그 이후를 좌우한다.’ 내일 우리는 그런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런 선택은 유권자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투표장에 나가지 않아 선택을 회피하고 나중에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버스는 떠난 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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