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삼성이 소니와 NEC를 제친 이유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2007.11.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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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 등 재벌은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악덕기업인가?

“대한민국이 21세기에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가 고민입니다.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투입하더라도 21세기에 먹고 살 기틀을 잡아주는 것이 내게 남겨진 마지막 사명입니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1980년 초, 모 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불러 털어놓은 얘기라고 한다. 당시 이 회장은 북한 정치를 오랫동안 강의해 온 그 교수를 찾아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로 평가받는다. 그렇다고 하루에 10끼를 먹겠느냐”며 이같이 밝혔다는 전언이다.



이 회장이 그 때 그 교수에게 밝힌 ‘21세기에 대한민국이 먹고 살 분야’는 IT(반도체)와 항공이었다. 이 회장은 그 때부터 삼성그룹 계열사를 총동원해 반도체 투자에 집중했다. 그 결과가 바로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로 발전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일본의 소니와 NEC를 따돌리고 세계 제일로 부상했다.

이 회장과 대한민국의 21세기를 놓고 대화를 나눴던 그 교수는 “이병철 회장 등 재벌을 창업한 오너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경제적 합리성을 뛰어넘는 직관과 헌신(Commitment)이 있다”며 “이런 직관과 헌신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을 세계 우량기업으로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회장과 나눴던 이런 대화를 소개했다. “북한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이 회장이 북한에서 1단보(ha)당 쌀 생산량이 얼마냐고 물었다. 당시 한국은 450kg 정도였는데 북한은 모르겠다고 했더니, 앞으로 남북 관계는 바로 이런 쌀 생산량의 차이로 좌우될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

그 교수는 재벌 오너의 직관과 헌신의 또 다른 사례로 현대자동차의 디젤엔진 개발을 소개했다.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디젤엔진은 시속 245km를 너끈히 달릴 수 있다. 명품 자동차의 대명사로 평가받는 벤츠에서 만드는 엔진과 견줄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가 이런 성과를 낸 것은 바로 정몽구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앞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엔진 개발을 위한 R&D(연구개발)이 필수적이라는 참모들의 의견에 대해 ‘맘대로 해보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삼성이 소니를 제친 이유에 대해 일본이 분석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일본 기업은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시스템 속에서 움직인다. 따라서 큰 실패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큰 변화에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NEC 등이 반도체 수요의 연간 증가율을 20~30%로 보고 투자할 때 삼성은 10년 뒤에 반도체 수요가 2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대규모 투자를 했다. 이것이 삼성전자가 NEC를 따돌렸을 뿐만 아니라 일본 전기전자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니마저 제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비슷하다. 도요타자동차는 해외 공장을 지을 때 대부분 5만대 규모로 짓는다. 대규모라고 해봐야 10만대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차는 30만대 이상의 대규모 공장을 짓는다. 디젤엔진을 개발할 때도 무모하다고 여길 정도로 자원을 투입한다. 현대차가 도요타자동차 수준을 따라잡으려면 분석적이고 시스템적인 것보다 무모하다고 여길 정도의 과감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이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화를 이루고 세계 제일 기업을 만들어 낸 것은 재벌 오너들의 이런 과감한 도전정신 덕분이었다. 때로는 과도한 도전정신으로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했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한국에서는 이같은 도전정신을 지닌 기업가를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무엇을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보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반기업-반재벌 정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심각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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