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문건속 '이건희경영' 읽기 "화제"

특별취재팀  | 2007.11.05 17:53

'은둔 경영자' 이 회장의 상세한 경영 행보.철학 등 엿보기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로비 증거라고 제시한 이른바 '이건희 회장의 내부 지시사항' 문건이 경영계에서 화제다.

로비 의혹 입증자료로 제시됐으나 경영계는 로비 관련 발언을 포함해 이 회장의 세심한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이건희 백서'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삼성 거래 기업들에겐 삼성 경영의 속내를 알 수 있는 필독 자료가 되고 있다.

세계 1위 삼성전자를 이끌어낸 이 회장의 경영 내용이 이처럼 상세하게 알려진 것은 사실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졌다. '모든 것을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이나 창조경영 등 거창한 화두만 던지는 경영 스타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서 이 회장은 세심한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현장을 중시하고, 작은 일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인재 육성에 대한 관심과 먼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 한 가지 문제를 끝까지 확인할 만큼 철두철미한 모습 등도 인상적이다.

◇"포크레인 기사에게 의견 들으라"

이 문건은 2003년에 이건희 회장이 지시한 사항을 비서실 등에서 메모해 둔 내부 문건이다.

2003년 8월 보광에서 내린 이 회장의 지시에는 "포크레인 기사에게 물어봐서 볼보, 대우, 현대 기계의 성능을 파악해볼 것"이라고 돼 있다.

이 내용은 건설현장에 필요한 중장비 선택에 대한 지시로 보인다. 포크레인 기사들이 중장비 성능을 가장 잘 아는 만큼 이들의 의견으로 중장비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현장 밑바닥의 상황을 중시하는 관점이 엿보인다.

"서울대 호암생활관 관장에게 관련자를 보내 시설 보수 등 개선점을 들어볼 것"(10월 13일)

"한전에서 기술자들을 스카웃해보되 꼭 윗사람뿐 아니라 밑에 안전관리 잘하는 사람들, 은퇴한 사람들 중에서 고문급 등을 데려올 것, 인건비는 전혀 아끼지 말고, 안전에 대해서는 150%, 200% 철저히 한다는 정신으로 할 것"12월 16일)

"평균 퇴근이 9~10시간이라니 특별 급여나 대우를 좋게하는 것을 검토할 것, 주5일이라도 반도체는 쉴수 없으니 특별 급여등을 검토할 것"(10월 10일)

"분당 플라자는 매각하든지, 위탁경영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것"(9월 5일)

이같은 '지시사항'들은 현장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재 육성에 가장 큰 관심

문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인재'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 회장은 11월 3일 휴대폰 사업 보고회에서 '우수 인력을 많이 뽑고, 기존 인력도 C급은 걸러내고 S급, A급을 중심으로 할 것'을 지시했다. 대학생 및 대학원졸 신입사원은 공부를 많이 시켜 5년 후에 필요한 인력으로 양성하라는 지시도 눈에 띈다.

경북대 부산대와 산학 협력으로 우수 인재를 육성하는 방안, 중국에서 인재를 채용하는 방안등도 이 회장이 직접 지시했다.

이 회장은 심지어 "S급 인력은 이스라엘·중국·인도·미국 등에서 많이 뽑도록 하되, 러시아는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으므로 선발시 주의할 것"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인재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도 중시했다. 이 회장은 "입사 10년쯤 되면 독자적으로 일할 능력이 되니 10년이상된 간부들 연봉을 인상해주는 것을 검토할 것"(10월 10일)이라고 지시했다.

이외에 "70나노 4기가 개발자 9명에 대한 특별 보너스 지급안을 검토해보고, 분당에 개발자 포함 우수자에게 좋은 주거 기회를 주는 것도 검토해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몸 사리는 직원보다 실패를 무릅쓰는 인재를 선호했다.

10월 9일 메모리 사업현장 보고에서 이 회장은 "(훈련견을) 은퇴한 (투)견하고 싸움을 시키는데 은퇴한 챔피언이 잡아서 누르려고 하면 떼어놓아 (훈련견을) 절대 지게 안한다"는 일화를 전하며 "2년간 체력훈련과 테크닉 훈련을 시키고 한번도 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견장으로 내보내게 된다"며 "한번도 지지 않았다는게 중요하고, 그런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관련, 10월 9일 메모리사업현황 보고에서 "경영기술을 위해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신기술 개발에 힘쓰라"고 독려했다.

그는 "큰 투자를 빙빙 돌리지 말고 책임이 나중에 올까봐 겁내지 말고 결정하라"며 "몇천억 손해봐도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할점을 찾으면 박수를 쳐주겠다"고도 했다.

◇미래 기술 준비 철저히


10년, 20년을 내다보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회장은 "(반도체 공정이)10나노까지 가는데 벽이 두 개쯤은 있을 거라 그랬는데, 이에 대비해 기술팀 2개를 만들 것"이라며 "70나노에서 50나노 갈 때, 50나노에서 10나노로 갈 때 한번씩의 벽을 뚫어야 하는데, 벽을 뚫을 개발팀은 지금부터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10월 9일)

지난달 삼성전자가 발표한 낸드플래시메모리 반도체의 최신 버전이 30나노 공정이다. 이 회장은 이미 4년 전에 10나노 공정까지 염두에 둔 기술개발을 지시한 것이다.


◇집요한 문제 해결 의지

문건에서 이 회장은 DVD의 문제점을 수차례 지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8월 24일 소니 DVD플레이어의 오작동 문제를 처음 거론했다. 장시간 사용하니 열이 많이 나 디스크가 저절로 나온다는 언급이다.

이후 10월 26일 도쿄에서 "DENON DVD플레이어를 밤새 사용했는데 문제가 없었다. 뜨끈뜨끈해도 문제가 없는데 이에 대해 벤치마킹 테스트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11월 14일엔 한남동 자택에서 DENON의 DVD가 패스트포워드 기능이 스무드하게 작용한다며 비교조사를 지시했다. 이외에 DVD의 속도조절기능을 VTR처럼 확대하라든가. 녹화기능을 넣으라든가, 조그셔틀 기능을 넣으라는 등 하나하나 기기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11월 20일엔 DVD가 VTR을 쓰던 사람들에게 불편하다며 이를 쉽게 만들도록 할 것을 지시해 총 4차례 DVD의 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할 것을 주문했다.

◇"조선업·휴대폰 왜 1등 못하나" 독려

이 회장은 조선업과 휴대폰 산업이 세계 1등으로 올라서지 못하는데 아쉬움을 갖고 독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반도체는 20년이 안되어서 일본을 뒤엎었는데 조선은 왜 뒤집지 못하나"며 "2~3년전 부터 내가 떠들어서 겨우 이 정도인데 조선에 조금 빨리 신경쓸 것(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휴대폰에 대해선 "노키아를 이기기 위해서 디자인·기술·조직 등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며 "대담하게 부품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투자도 하고 홍보활동도 강화하는게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인기 절정의 광고모델을 독점 기용하는 등의 대담한 광고활동까지도 고려해볼 것"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11월 13일)

◇"이런 일까지 챙겼나.." 눈길

거대 그룹에서 일어나는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일일이 챙겼을까. 이튼스쿨 럭비부, 경남의령의 수해지역, 사장단 콘도까지 신경쓰고 있다.

"이튼 스쿨의 럭비부가 내년(2004년)에 한국을 찾는다고 하니 공장견학도 시켜주고 다른 럭비부와 시합도 주선해주는 스폰서방안을 검토할 것"(8월20일)

"경남 의령이 금번 수재에서 피해가 큰 것 같음. 선대 생가를 비롯해 피해 정도를 알아보고 지원방안을 검토할 것"(9월 16일)

"신임임원 교육시 1박 정도 부부동반해 테이블 매너 및 와인 교육 등 임원으로서의 매너 및 소양교육을 시킬 것"(12월 22일)

"내년도 신년하례식 때 일본인 고문들 집에 안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참석시키고 회장께 인사시키도록 할 것"(12월 25일)

"보광 Senior 콘도 설립과 관련하여 사장단들 희망평수를 조사해볼 것"(12월 26일)

"곰팡이·진드기 등을 박멸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해볼 것"(12월 17일)

◇"이제는 인류 공헌할때.."

10나노 공정에 대한 개발 지시를 할 때 이 회장은 "10나노 공정은 반도체 뿐 아니라 인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인류 공헌에 기여하는 자세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문건'이 삼성측이 배포한 보도자료라면 의례적인 멘트로 볼 수 있으나 오히려 비밀스런 내부 문건이라는 점에서 이 회장의 경영 목표가 무엇인지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 회장은 또 "삼성화재 애니카서비스에 정비를 받는 사례중 잠깐 잘못해 나는 사고는 사례책자를 만들어 사고를 예방하는 요령을 알려주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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