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을 자린데" 대파·들깨가…10년 표류 오남 '알박기 논란' 진실은

머니투데이 남양주(경기)=김미루 기자, 김지은 기자 2024.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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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한 아파트 건립 추진 토지. 10년째 방치된 땅에 인근 주민들이 무단으로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다. /사진=김미루 기자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한 아파트 건립 추진 토지. 10년째 방치된 땅에 인근 주민들이 무단으로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다. /사진=김미루 기자


지난달 18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 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들판. 8000여평에 달하는 대지에는 대파, 옥수수, 들깨가 자라고 있었다. 농작물이 심긴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땅은 잡풀만 무성했다. 석면 유출 위험이 있는 지붕용 슬레이트가 투기돼 있었고 스티로폼이 나뒹굴었다.

이곳은 '오남3지역주택조합(지주택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아파트 건립을 추진했던 곳이다. 개발 기대감이 부풀며 조합원 600여명까지도 모여들었지만 사업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토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갖가지 고소와 소송, 비방전이 펼쳐졌다. 이런 사이 건설 경기가 불황에 접어들었고, 수도권의 노른자위 땅은 무단 경작지로 바뀌었다.



기대감 부풀었던 땅에 10년째 풀만 무성, 이유는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한 아파트 건립 추진 토지. 10년째 방치된 땅에 석면 유출 위험이 있는 슬레이트 등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사진=김미루 기자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한 아파트 건립 추진 토지. 10년째 방치된 땅에 석면 유출 위험이 있는 슬레이트 등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사진=김미루 기자
지주택조합은 민간 차원에서 토지를 매입해 주택을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파트 건립은 조합원 모집→조합설립인가→사업계획승인(토지확보율 95% 이상)→착공 순으로 이어진다.



오남3지주택은 토지확보율 80% 이상, 조합원 모집률 50%를 충족하면서 2017년 10월 남양주시장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수년간 사업계획 승인을 받지 못했다. 토지를 95%까지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조합이 보유한 토지는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726-1 외 54필지 6562평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땅은 당초 2015년 8월 A유한회사가 한국토지신탁으로부터 사들인 땅이었다. A사는 조합과 해당 토지를 매매하는 계약 체결을 마친 상태였다. 이후 A사는 2015년 9월 무궁화신탁과 담보 신탁 계약을 맺었다. 당시 채권자는 저축은행 1곳과 새마을금고 2곳이었다.


저축은행 등은 채권 만기가 지나도 A사로부터 원리금을 받지 못하자 무궁화신탁에 해당 토지를 공매 처분해달라고 요청했다. 2019년 7월 공매에서 동아건설이 응찰해 땅을 낙찰받았고, 8월 무궁화신탁과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사업 무산 위기에 처한 조합은 2019년 9월 무궁화신탁을 상대로 공매 토지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동아건설은 이 과정에서 사업 추진을 위해 2019년 10월 낙찰받은 땅 옆에 있던 땅 1296평(오남리 736-1)을 사들였다.



건설사가 공매 낙찰→인근 토지 추가 매수→낙찰 취소…조합은 '알박기'로 몰아가
/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
가처분신청이 들어오자 무궁화신탁은 2020년 6월 '매매 부동산과 관련해 소송, 보존처분 등이 있으면 매매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고 규정한 매매계약서 특약사항에 따라 6562평에 대한 매매계약을 해제했다. 동아건설로서는 매매계약이 일방적으로 해제됨에 따라 사업 추진을 위해 나중에 사들인 1296평 땅만 보유하게 됐다.

이후 조합은 동아건설이 보유한 땅을 매수하려 시도했고 공동사업도 추진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번번이 무산됐다. 조합 측 업무대행사가 지속적으로 조합원을 추가 모집하는 데 대해 건설사 측이 사업성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난항을 겪자 조합 측은 건설사에 대해 '알박기' 의혹을 제기했다. 조합은 2022년 6월 대통령실에 낸 탄원서에서 "아파트 건립이 추진 중인 것을 알면서 토지 알박기를 자행했다"며 "조합이 95% 이상 토지를 취득해야 함을 악용해 사업 진행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탄원서를 낸 배경에 대해 조합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 한 전화통화에서 "조합이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큰 기업이 땅을 사려고 한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해 알박기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아건설은 공매를 통해 토지를 확보한 뒤 사업 시행을 위해 추가토지를 매수했고 낙찰이 취소된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알박기'는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동아건설 측은 "무궁화신탁에 공매를 신청한 게 금융기관"이라며 "우리는 문제가 없다고 봐 응찰을 했고 낙찰을 받자 사업 진행을 위해 필수적인 땅을 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입장에서는 정당하게 낙찰받은 땅을 (입찰이 취소돼) 빼앗긴 것"이라며 "오히려 금전적 손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탄원·고발 진흙탕 싸움…조합 관계자 상대 고소만 190여 건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한 아파트 건립 추진 토지. 10년째 방치된 땅에 잡초가 무성하다. /사진=김미루 기자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한 아파트 건립 추진 토지. 10년째 방치된 땅에 잡초가 무성하다. /사진=김미루 기자
조합은 탄원서 제출에 앞서 2021년 11월에는 '사업활동 방해행위'를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동아건설을 고발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곤란해 법 위반 여부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라며 심사 절차를 종료했다.



이같은 비방과 고발은 역풍을 맞았다. 건설사 측은 2022년 6월 조합 비대위원장, 조합 업무대행사 관계자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해 7월 고소 건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지만 동아건설이 이의신청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현재 경찰에서 보완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조합 관계자들의 사기 의혹도 불거졌다. 경찰에는 지난해부터 오남3지주택조합장, 업무대행사 관계자 등 4명을 상대로 고소장이 190여건 접수됐다. 고소장을 낸 이들은 대부분 조합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남양주북부경찰서는 수사를 벌여 지난해 7월 사기와 주택법 위반 혐의로 이들 4명을 불구속 송치했으나 이후에도 고소장 제출이 잇따르자 사건을 병합해 보완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5년 10월부터 지하 2층~지상 29층 아파트를 짓는다며 조합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아파트 부지를 70~80%가량 확보해놓고 100% 확보했다고 조합원을 속인 혐의(사기)를 받는다. 조합 가입 과정에서 동·호수가 지정된 것처럼 광고해 계약한 혐의(주택법 위반)도 수사 중이다.

사기 혐의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피고소인 중 한 명인 이모씨와 통화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합은 사업방식 전환 추진하며 조합원 추가 모집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한 아파트 건립 부지 위에 '오남역 삼부르네상스 아파트 신축부지 안내' 팻말이 붙어있다. /사진=김미루 기자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에 위치한 아파트 건립 부지 위에 '오남역 삼부르네상스 아파트 신축부지 안내' 팻말이 붙어있다. /사진=김미루 기자
조합 측은 지역주택조합을 통한 아파트 건립이 사실상 무산되자 지난해부터 민간임대협동조합으로 사업 방식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 해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조합원들이 추가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합 측은 "지난해 총회가 끝난 이후 민간임대로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며 "건설 경기가 너무 안 좋으니까 원래 목표했던 일정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해당 부지에는 '오남역 삼부르네상스 아파트 신축부지 안내' 팻말이 붙어있다 . 이에 대해 시공예정사로 올라와 있는 삼부토건 관계자는 "아직 공사를 진행할지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삼부토건 관계자는 "공사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제 브랜드명을 걸고 먼저 선 광고를 한 다음에 분양이 어느 정도 되면 그때 공사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남양주시도 공식적으로 민간임대협동조합 설립 신청을 받은 적이 아예 없다는 반응이다. 남양주시 주택과 관계자는 "동일한 땅에 다른 사업 주체에게 사업 시행 인가를 내줄 수 없다"며 "지주택조합에서 변경인가나 해산인가 신청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민간임대협동조합 설립 관련 일련의 행정 절차를 밟은 것도 현재로서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남양주시가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 총회를 개최하라'고 공문을 보냈지만 조합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조합 사무실에 공문을 등기로 보내고 업무대행사에 수시로 연락해 해산 총회 개최를 독려하고 있는데 조합장은 지난해 초부터 연락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주택법에 주택조합 해산 관련 규정(제14조의2)이 신설되면서 조합은 설립인가를 받은 날부터 3년이 되는 날까지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 총회를 거쳐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아도 벌칙 규정이 따로 없어 지자체가 손 쓸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피해를 봤다고 하는 민원인들이 답답한 마음에 우리에게 전화를 주는데 법적으로 명백하게 구제 방법이 있으면 수백 번도 안내해 드릴텐데 장치가 없다"며 "우리도 답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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