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조종사의 착각, 공중서 비행기 멈췄다…이륙 30분만에 '170명 사망'[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김소연 기자 2024.08.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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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고 직후 기체가 불타오르는 모습/사진=유튜브 영상 캡처사고 직후 기체가 불타오르는 모습/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최근 대중들에게 난기류의 위험성이 새삼 일깨워지고 있다. 항공기 내 라면 금지 조치, 환경 변화 등 때문이다.

사실 과거 대규모 인명피해를 냈던 항공 사고의 경우 많은 확률로 난기류가 원인이었다.

18년 전인 2006년 이날, 170명의 탑승자 목숨을 통째로 앗아간 풀코보 항공 612편 사고 역시 난기류 대응에 실패한 조종사 과실이 원인이었다.



긴박했던 30분…결국 170명의 귀한 목숨 앗아가
정확히 18년 전인 2006년 8월22일, 아나파 국제공항에서 풀코보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하던 풀코보 항공 소속 Tu-154 기종 612편 여객기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탑승객 160명과 조종사 10명 등 170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는 18년전 이날 새벽 3시4분경으로 거슬러 간다. 비행기는 순조롭게 러시아 아나파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상태였다.



아나파는 흑해 연안에 위치한 휴양도시로, 여름에는 바닷가 백사장에 휴가를 즐기려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당시 풀코보 612편에 탑승한 이들도 대부분 휴가를 보내고 집에 돌아가려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었다. 기내에 12살 이하 어린이 승객 숫자만 45명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나파 휴양도시 이미지/사진=구글 캡처아나파 휴양도시 이미지/사진=구글 캡처
휴가가 끝나는 아쉬움과 함께 날아올랐던 비행기는 순식간에 비극을 맞았다. 이륙 후 30분 만에 난기류를 만난 것이다. 비행을 허가하고 항공교통을 원활하도록 도와야 할 관제사의 실수로, 난기류 정보를 받지 못한 채 항공기가 날아올랐던 것이다.


베테랑 조종사들은 난기류를 피하기 위해 고도를 올렸다. 그러나 난기류 전선은 조종사들의 생각보다 높았고, 기장은 회항하거나 난기류를 뚫고 비행하는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

당시 풀코보 항공은 연료를 아낀 조종사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규정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회항하면 보너스는 날아갈 터, 기장은 눈앞의 뇌우를 뚫고 비행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비행기가 고도 3만8000피트까지 올라갔을 때 난기류의 고도가 예상 밖으로 높은 것을 확인했다. 기장은 난기류를 벗어나고자 관제사에게 3만9000피트까지 상승하겠다고 요청했고, 허가가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높은 고도에서 또다시 상승하려던 비행기는 속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기장은 점점 위급상황을 인식하고 혼란에 빠졌다. 조종사들도 함께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결국 난기류에만 집중하다 비행기 속력이 점차 느려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고 항공기의 사고 전 모습/사진=제트포토닷컴(jetphotos) 캡처사고 항공기의 사고 전 모습/사진=제트포토닷컴(jetphotos) 캡처


비행기는 마침내 고도 3만9000피트에 도달했지만, 속도가 420km까지 줄어든 상황이었다. 속력을 잃는 '실속' 상황이 되면, 비행기 날개가 양력을 받지 못해 비행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부기장이 실속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기장에게 하강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직 비행기가 난기류 속에 있다고 착각한 기장은 이를 거절했다. 계속 고도가 높아진 비행기는 결국 공중에서 멈추고 말았다.

모든 조종사와 엔지니어들이 멈춰버린 엔진을 되살리려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실속에 빠져버린 비행기는 2분30초 동안 초속 50m의 속도로 빠르게 떨어졌고, 결국 도네츠크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 '수카 발카'에 추락하고 말았다.



높은 곳에서 그대로 떨어진 비행기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주민들이 혹시 모를 생존자를 위해 급히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생존자는 '제로(0)'였다.

자신만만했던 기장과 보잉 '짝퉁' 기종까지…사고 원인은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진 풀코보 612편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기장이었던 이반 이바노비치 코로고딘은 1만2000시간 넘게 비행한 베테랑 조종사로, 그중 사고 비행기와 동일한 Tu-154 기종만 6000시간 가까이 비행한 이력이 있었다. 베테랑이라는 자신감에 난기류 앞에서도 회항하지 않고 비행을 감행했다가 큰 사고가 터진 것이다.



항공사가 연료를 아끼면 보너스를 지급하는 정책을 썼던 것도 그가 난기류를 뚫기로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예상보다 높았던 난기류를 피해 가기 위해 무리하게 높인 고도는 결국 비행기 엔진을 멈추게 하는 실속으로 이어졌다.

Tu-154 기체 건조 모습/위키피디아 캡쳐Tu-154 기체 건조 모습/위키피디아 캡쳐


러시아의 투폴레프사가 제작한 항공기 Tu-154의 결함 역시 사고에 기여했다. Tu-154는 보잉 727 비행기를 그대로 모방해 만든 비행기로 대형 사고가 자주 발생하기로 악명이 높다.

비행기가 85톤의 중량으로 무겁고, 꼬리날개 설계 특성상 스핀도 어려워 유독 사고가 잦았다. 이에 서방국가 사이에서는 '날아다니는 관(Flying Coffin)'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였다. 2020년을 마지막으로 Tu-154는 여객기 기종에서 퇴출됐다.

비극적인 죽음 담은 추모비는 우크라이나에…항공사는 망해
우크라이나 수카 발카 마을에 남아있는 추모비/사진=구글맵우크라이나 수카 발카 마을에 남아있는 추모비/사진=구글맵
비행기가 지상에 추락하기 직전, 사고 당시를 담은 녹음파일이 공개됐었다. 조종석에 함께 탑승했던 훈련생 조종사들이 지상 충돌 직전 "죽고 싶지 않아" "엄마, 사랑해요" 등의 메시지를 남긴 것이 이후 전해지면서 슬픔을 배가하기도 했다.



현재 사고기가 추락한 수카 발카 마을에는 비행기 추락 사고와 관련해 추모 공원이 마련돼 있다. 추모공원은 지난해 말 기준 우크라이나 영토에 속해있다.

170명이 하릴없이 목숨을 잃은 이 사고는 난기류의 위험성과 베테랑 조종사들의 지나친 자신감을 경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932년 설립돼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민영 항공사였던 풀코보 항공은 이 충격적인 사고 직후 고객이 끊기면서 경영난에 시달렸다. 결국 사고 2개월 후인 2006년 10월29일 로시야 항공에 합병되면서 사라졌다. 로시야 항공은 러시아 국영 항공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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